
하재근 문화평론가
인공지능의 빠른 발달이 무서울 정도다. 엄청난 학습능력으로 인간 지식의 모든 것을 흡수해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과연 대량 실업 사태로 이어질 것인가? 그 여부를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우려를 자아내는 건 사실이다.
최근에 워싱턴 포스트가 "음악 시장에서 AI가 인간의 영역을 대거 침범할 것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고 보도한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신인 인디 록밴드인 밸벳 선다운(The Velvet Sundown)의 데뷔 앨범과 수록곡인 '더스트 온 더 윈드(Dust on the Wind)'라는 노래가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인 스포티파이 차트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건이다.
이들은 한 달 만에 스포티파이 월간 청취자수 110만 명을 돌파했고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스포티파이 '바이럴 50' 차트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수상쩍은 부분들 때문에 미국 누리꾼들 사이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의혹이 번져갔다. 처음에 강하게 부인했던 밴드 측은 결국 인정하고 말았다.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고 부른 주체가 모두 인공지능일 뿐만 아니라 밴드 자체가 가상의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개된 사진, 인터뷰 자료까지 모두 인공지능의 창작(?)이었다고 한다.
밴드 측은 자신들의 행위가 "AI시대에 음악의 창작성, 정체성, 그리고 미래의 경계에 도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되는 예술적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정말 진정성 있는 예술적 도전인지 아니면 수익을 노린 사기극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현재 음악 예술이 인공지능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사태가 처음 예감됐던 것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때였다. 당시 인공지능이 머신러닝이라는 기술로 역사상 대부분의 기보를 다 학습했다고 알려졌다. 그 결과 바둑 실력이 인간을 앞질렀다는 것이다. 그때 제기된 우려 중의 하나가 '인공지능이 역사상 모든 히트곡을 다 학습하면 그 패턴을 파악해 작곡에 나설 수 있지 않을까'였다.
2024년 4월에 한국에서 인공지능이 마침내 음악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경북과 전남의 교육청이 진행한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한 노래가 인공지능 작품이라는 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어느 초등교사가 명령문을 입력해 간단히 출력한 노래였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김형석은 "1위로 뽑힌 곡이 제법 수작이었다. 그런데 오늘 주최 측으로부터 AI를 사용해서 텍스트만 치고 만들어진 곡이라는 통보를 받았다"라며 "이제 난 뭐 먹고살아야 되나. 허허..."라고 올렸다.
그리고 1년여 만에 서구에서 인공지능 밴드가 정식 음원차트에 진입한 것이다. 공모전은 아마추어도 많이 참여하지만 음원차트는 본격적인 프로의 영역이다. 대기업의 홍보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마이너 장르인 인디 록의 신인이 음원차트에 진입하는 건 특히 쉽지 않다. 그런 일을 해냈으니 확실하게 경쟁력이 있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초고속이기 때문에 곧 더욱 고도화된 노래들을 내놓을 것이다. 케이팝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많은 작곡가들이 인공지능을 보조 도구로 쓰고 있다. 그러다 각종 배경음악, 행사음악 창작 등 난이도가 낮은 시장부터 인공지능에게 빼앗길 수 있다. 인공지능은 국가 전략산업으로서 시급히 발전시켜야 한다. 동시에 인간이 인공지능에 어떻게 대응하고 안전하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조속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