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규완 논설위원
인지부조화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연구한 심리학 이론이다.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 행동, 태도가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정신적 불편감을 말한다. 신념과 행동이 상충할 때 불편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거나 가치관을 바꾸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역시 인지부조화라 한다. 예컨대 금연에 실패한 사람이 "'닥치고 금연'보다 적당히 흡연하는 게 정신건강에는 더 좋아"라고 합리화하거나, 높은데 매달린 포도를 따 먹지 못한 여우가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거야"라며 자위하는 경우다.
온 세상이 다 안다. 인적 청산이 국민의힘 쇄신의 길이라는 것을. 하지만 하지 못한다. 명백한 인지부조화다. 국힘의 거대한 본류가 다 인적 쇄신 대상인 얄궂은 운명? 그래도 "인적 쇄신이 없다"는 이실직고는 차마 못 할 터. 시늉은 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얼굴마담'이 필요했고 혁신위원회라도 꾸려야 했다. 하지만 쇄신은 시늉만 하랬는데 진짜 인적 청산? 윤희숙 혁신위원장은 중진 의원 네 명을 실명으로 지목하며 거취를 요구했다.
침묵할 친윤이 아니다. "윤희숙의 오발탄"(장동혁 의원) "자해 행위"(나경원 의원) "희생할 준비가 돼있다"(윤상현 의원) "공감이 되지 않는다"(송언석 비대위원장). 윤 위원장의 결기와 친윤·지도부의 충돌은 필연이다. 중과부적? 지난 17일 비대위원회에 참석한 윤 위원장은 "다구리" 한마디로 갈음했다. 다구리는 몰매의 은어다. 윤희숙의 혁신안이 비대위에서 비토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윤 위원장은 당 대표 선출 시 국민여론 100% 반영을 주장했다. 또 2004년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사건 당시 중진 의원 37명의 불출마를 거론하며 중진들의 책임을 촉구했다.
국힘 지도부가 인적 쇄신을 회피하니 궤변과 요설이 난무한다. "우리 모두가 혁신의 객체이면서 주체" "인적 쇄신은 인재 충원으로" "계파 몰아내는 것이 혁신 아니다" "순서가 거꾸로다. 백서부터 만들어야". 백서만 만들다 날 새울 건가.
인적 청산 요구는 분출한다. "친윤 소멸시켜야 보수 혁신 가능"(안철수 의원) "보수궤멸 을사5적 청산해야"(김근식 전 국힘 비전전략실장) "인적 청산 없으면 백약이 무효"(조경태 의원). 윤희숙이 지목한 4인방에 더해 대선 후보 교체 쿠데타를 주도한 '쌍권'까지 인적 쇄신 명단에 올려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관저에 몰려가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의원 45명의 징계도 필요하다. 하지만 친윤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인적 쇄신이 가능하겠나.
국민의힘이 과거와 단절해야 하는 이유와 명제는 명징하다. 그런데 자꾸 딴죽을 건다. "탄핵 반대가 왜 잘못인가"(나경원 의원). 중진의 현실 인식이 한가하고 생뚱맞다. 탄핵안이 계속 부결됐을 때의 국가적 위기와 혼란을 상상이나 해봤나. 한 친한계 의원은 2차 계엄, 유혈사태까지 가정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잔상과 극우 그림자를 지울 수 있을까. 쉽지 않을 듯하다. 윤상현·장동혁 의원은 '윤 어게인' 토론회를 주최하며 극우 유튜버 전한길을 국회로 불러들였다. 전씨는 불법 계엄을 두둔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옹호했다. 윤희숙은 "극악한 해당행위"라고 직격했다. 전한길씨는 아예 국힘을 접수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청산 대상으로 거명되는 의원은 당 대표 자리를 기웃거린다. 여의도 '봉숭아 학당'이 벌이는 황망한 촌극이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괜히 무저갱으로 추락했을까. 논설위원
'인적 청산' 못 하는 속사정
시늉만 하랬는데 거취 요구
쇄신 주장한 윤희숙 '다구리'
청산 대상이 대표 자리 기웃
여의도 '봉숭아 학당'의 촌극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