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노인 빈곤과 ‘위험사회’

  •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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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27 22:19  |  발행일 2025-07-27
구경모기자 <사회1팀>

구경모기자 <사회1팀>

시간당 60㎜에 가까운 폭우가 대구 전역을 뒤덮은 지난 17일 아침, 출근 차량으로 빼곡한 도로 사이로 한 노인이 위태롭게 손수레를 끌며 걷고 있었다. 거센 빗줄기 속 우산 하나 없이 도로를 누비는 그는 '폐지 수거 노인'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말 집계한 전국 폐지 수거 노인은 총 4만1천876명. 평균 연령은 76세다. 폐지 수거 노인이 하루 종일 노상을 누벼 모은 폐지로 가져가는 돈은 겨우 하루 평균 7천원. 시급으로 환산하면 1천원이 채 되지 않는다.


좁고 위험한 도로 사이를 오가며 겪는 교통사고 위험과 적지 않은 나이에 반복되는 노동으로 생긴 근골격계 질환은 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매일 거리로 나선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장대비가 쏟아져도 멈출 수 없는 '생존'의 문제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는 바로 이런 현실을 일컫는다. '위험사회'란 복잡한 사회구조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과 위험이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돼 취약계층의 고립과 불안을 심화시키는 사회 현상을 의미한다.


매일 거리에서 각종 위험에 시달리면서도 노년의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폐지 수거 노인들의 처지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위험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2023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폐지 수거 노인의 39.4%가 우울 증상을 겪교 있다. 일반 노인층(13.5%)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또한 직업적 손상 유병률은 일반 직업군의 10.4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생존을 위해 거리로 나서지만 되레 건강을 잃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노년층이 겪는 절대빈곤을 개인의 책임쯤으로 치부해왔다. 그러나 생애 마지막 국면에서 노상으로 내몰린 이들의 고통은 사회 구조에서 빚어지는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 국내 60세 이상 취업자가 94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인 빈곤율은 38.2%로 OECD 회원국 중 최악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일자리를 찾는 고령층도 지난 10여 년간 연평균 25만 1천명 증가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45년 고령 인구가 전체의 37%에 이를 것이라 전망한다. 이미 대구는 2023년에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폐지 수거 노인들이 겪는 노년의 빈곤은 더 이상 일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맞닥뜨릴 수도 있는 미래의 한 단면이다.


노인 빈곤 문제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재의 부실한 노후 안전망이 가져올 사회적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노후 대책을 재정비하고,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 체계를 마련해 어떻게 '위험사회'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삶을 보장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할 때다.


구경모기자<사회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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