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BV(간염 바이러스) 감염과 환경 발암물질이 결합해 간암으로 진행되는 면역학적 메커니즘을 설명한 개념도.<계명대 동산의료원 제공>
B형 간염 바이러스(HBV) 감염 자체로는 간암 유발 가능성이 낮지만, 흡연이나 환경 오염물질 등 외부 발암 요인과 결합할 경우 간암 위험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과정에서 면역 반응을 교란시키는 특정 단백질이 핵심 역할을 하며, 이를 억제할 수 있는 기존 약제가 간암 예방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는 계명대 의대 해부학교실 박종호 교수(교신저자)와 배안나 박사과정생이 참여한 연구팀이 미국 하버드대 의대와 공동진행한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이 내용은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IF 15.7)에도 최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간암의 발생 기전을 면역학적 관점에서 규명함과 동시에 기존 약물의 예방적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향후 HBV 고위험군 환자 관리 전략 수립에도 과학적 근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생쥐 모델을 통해 HBV 감염 상태에선 단독으로 간암이 잘 발생하지 않지만, 외부 발암물질에 노출되면 간세포가 민감하게 반응해 암 발생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염증 유발 단백질 IL-33이다. IL-33은 암에 대한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조절 T세포(Treg)를 활성화시켜, 체내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는 간암이 면역을 회피하는 기전 중 하나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고지혈증 치료에 사용되는 스타틴 계열 약물이 IL-33 발현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팀이 피타바스타틴을 HBV 감염 모델에 투여한 결과, 간세포 손상과 간암 발생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실제 환자 대상 역학조사에서도 스타틴 복용군에서 간염 및 간암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종호 교수는 "HBV 감염자 모두가 간암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외부 발암 요인을 피하고, 스타틴과 같은 약물을 활용하면 간암 예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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