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노동하는 시민 VS 투자하는 시민

  • 김세현 기술보증기금 고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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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08 06:00  |  발행일 2025-08-07
김세현 기술보증기금 고객부장

김세현 기술보증기금 고객부장

현대 자본주의는 오랫동안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라는 틀 안에서 발전해왔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주주의 이익 극대화'였고, 그 결과 효율성과 수익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이 구조는 부의 집중, 단기 실적 중심 경영, 이해관계자와 사회적 책임의 경시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세계 상위 10%가 대부분의 주식과 자본을 보유하고, 다수의 시민은 생산과 소비에는 참여하지만 자본 축적 과정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이러한 불균형은 단순한 경제 문제만이 아니다. 자산 불평등은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고, 계층 간 갈등과 사회 불안정을 심화시킨다. 더구나 기술 발전과 글로벌 자본 이동이 가속화되면서, 자본의 편중은 국가와 세대를 넘어 구조적 문제로 고착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제기된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시민자본주의(Citizen Capitalism)'다.


시민자본주의는 단순히 분배정책을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시민 모두가 자본시장에 참여해 기업 성장의 과실을 장기적으로 공유하는 구조이다. 유니버설 펀드, 국민참여형 공공펀드, 데이터 배당과 같은 제도를 통해 시민이 직접·간접적으로 주주가 되고, 배당과 자본이득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는 '반(反)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결함을 수정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보완적 진화다.


이재명 정부의 투자철학은 이러한 시민자본주의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그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와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를 표방하며,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더 많은 국민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펀드 조성, 기본금융, 데이터 배당 같은 정책은 국민을 '소비자'에서 '투자자'로 전환시키는 토대가 될 수 있다. 특히 국가가 민간 자본과 매칭하여 첨단산업에 투자하고, 수익을 국민과 나누는 구조는 단순한 재분배를 넘어 투자와 수익 창출의 과정에 국민을 동반자로 세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 시민이 주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소액주주 권리 보호, 의결권 강화,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를 통해 시민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금융·투자 교육을 강화해 국민이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포용적 투자 플랫폼을 구축하여 누구나 적은 금액으로도 분산투자와 장기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야 한다.


투자자의 자세 또한 달라져야 한다. 시민자본주의는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와는 거리가 멀다. 기업의 펀더멘털을 분석하고,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평가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배당을 재투자하여 복리 효과를 누리고, 산업과 지역에 분산 투자하는 습관은 장기적 부 축적의 핵심이다. 투자자는 단순한 '시장 참여자'가 아니라,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시민이라는 자각이 요구된다.


주주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성과와 부작용을 바로 보아야 한다. 시민자본주의는 더 이상 이상론이 아니다. 정부가 제도적 길을 열고, 시민이 주인의식과 장기투자 문화를 갖춘다면, 우리는 '노동하는 시민'에서 '투자하는 시민'으로, 나아가 '경제의 주인인 시민'으로 진화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성숙한 미래이자,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분배경제의 새로운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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