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철강·2차전지 숨통, 국가가 틔워야 한다

  •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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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5 09:23  |  발행일 2025-08-14
美, 철강 제품 50% 관세 부과
포항 철강업계의 초비상
K-스틸법 입법 속도 내야
2차전지 산업도 흔들려
산업 붕괴는 곧 국가위기
김기태 동부지역본부 차장

김기태 동부지역본부 차장

7월 31일 타결된 한미 무역협상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자동차와 상호관세 완화라는 성과가 있었지만, 철강 부문에서는 미국의 50% 고율 관세가 그대로 유지됐다. 이는 명목상 현상 유지지만, 현장에서는 "미국 시장 철수 통보"와 다름없다는 냉소가 터져 나온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사뿐 아니라, 전체 수출의 40% 이상을 미국에 의존해온 포항 강관업체들은 '수출 봉쇄'라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3월 단행된 25% 인상도 겨우 버텼던 이들에게 6월부터 적용된 50% 관세는 생존을 위협하는 직격탄이다.


포항은 철강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도시다. 제철소 굴뚝에서 연기가 멈추면 곧바로 협력업체 가동률이 떨어지고, 하청·물류·서비스업까지 연쇄 충격이 파급된다. 이번 협상 결과는 곧 지역 경제의 혈관이 막히는 일과 같다. 전문가들은 "관세 충격이 장기화되면 포항의 경기 저점은 더욱 깊어지고, 도시 공동화 위험이 한층 빨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산업 기반까지 흔들리면, 회복은 더 어려워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포스코이앤씨의 연이은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포스코그룹 전체의 평판을 뒤흔들고 있다. 해외 수주 경쟁력 약화, ESG 평가 하락, 금융권 신뢰 저하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국가 산업 브랜드의 손상으로 이어진다. 수십 년간 대한민국 제조업의 버팀목이던 포스코마저 흔들리면, 이는 산업 생태계 전반에 금이 가는 일이다.


이런 위기 속에서 8월 4일, 국회철강포럼 공동대표인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과 국민의힘 이상휘 의원이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철강산업 고부가화, 구조 전환 지원, 산업 생태계 안정 등을 담은 이 법안은 포항시와 철강업계, 포스코그룹 노조로부터 환영받았다. 그러나 법안 발의만으로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당장 필요한 것은 긴급경영자금 투입, 산업용 전기요금 지원, 원재료 수급 안정 같은 신속한 대책 실행이다. 이 병행이 없다면 법안의 효과는 현장에 닿기 전에 소멸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철강만이 아니다. 포항이 미래 먹거리로 육성해온 2차전지 산업도 가동률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글로벌 수요 둔화, 가격 경쟁 심화, 공급망 불안이 겹친 상황에서 포스코퓨처엠과 에코프로 역시 한계 가동 체제로 버티는 형국이다. 국민의힘 이상휘 의원이 지난 4월 발의한 '이차전지산업 육성 및 지원 특별법안'은 산업 경쟁력 회복의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속도가 생명이다. 정책 집행이 늦어지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주도권은 되찾기 힘들다.


철강과 2차전지는 단순한 지역 기반 산업이 아니라, 국가 제조업을 떠받치는 양대 축이다. 포항이 무너지는 것은 지방 한 도시의 몰락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지도의 균열이다. 정부는 이번 협상 결과를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과의 추가 관세 조정 여지를 찾는 외교적 노력과 함께 산업 경쟁력 강화 및 긴급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지금 경북 제1도시인 포항은 유령도시의 문턱에 서 있다. 산업이 살아야 도시가 살고, 도시는 국가의 뼈대를 지탱한다. 'K-스틸법'과 '2차전지 특별법'은 분명한 회생 신호탄이다. 그러나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면 과감하고 신속한 국가적 결단이 뒤따라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시간은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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