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설명은 충분했다는 행정의 착각

  •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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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20 08:20  |  발행일 2025-08-19
장석원 경북본사 부장

장석원 경북본사 부장

지방자치의 꽃은 주민의 목소리에 대한 행정의 깊은 경청에서 피어난다. 주민의 요구를 정책에 녹여내는 것은 지방정부 존재의 이유이자 신뢰의 근간이다. 그러나 지난 13일 예천군이 주관한 경북도청신도시 정책공유 및 주민토론회는 '듣는 행정'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토론회 후, 온라인 공간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성과 홍보에 치우쳤다",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고, 일부는 "군의 노력을 알리려는 취지"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군은 이런 지적을 '일부 주민의 불만'으로 축소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정도 들었으니 충분하다"는 자족적 태도였다. 하지만 행정에서 듣는다는 것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최근 지자체들은 의료와 복지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찾아가는 복지'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돌봄과 의료를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는 거동이 불편한 주민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보호자가 전화 한 통만 하면 전문팀이 상담과 건강평가 후 직접 가정을 방문한다. 장기요양 등급자만을 대상으로 하던 기존 재택의료 사업과 달리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문턱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이는 제도 설계자가 주민의 불편을 '불만'으로 보지 않고 개선의 단서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민의 작은 목소리를 존중할 때 정책은 현실에 가까워지고 행정은 신뢰를 얻는다.


경북도청신도시를 둘러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구 2만 2천여 명, 평균 나이 33세의 매우 젊은 도시로 그만큼 성장을 요구하는 에너지가 크다. 젊은 세대가 모여사는 도시는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 안정된 일자리, 생활 인프라 확충에 대한 요구가 크다. 이러한 요구는 단순한 불만이 아닌, 신도시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주민의 목소리에는 예산 집행의 효율성, 행사 운영 방식, 개발 속도와 생활 인프라 균형 등 군정의 핵심 과제가 담겨 있다. 행정이 이러한 '빈틈'을 외면한다면, 소통은 단절되고 불신은 깊어질 것이다.


경북도청신도시의 미래는 아직 열려 있다. 화려한 개발 청사진이나 수치로 제시되는 외형적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변화다. 교통망이 뒷받침되고 교육·문화 시설이 확충되며 복지와 의료 체계가 균형 있게 마련될 때 신도시는 '살 만한 도시'로 완성된다. 이것은 단순한 도시개발이 아니라 주민의 삶 전체를 설계하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주민의 목소리를 불편한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책을 보완하는 자원으로 삼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행정은 신뢰를 쌓고 도시는 성장한다.


행정의 힘은 말하는 데 있지 않다. 끝까지 듣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불만은 불평이 아니라 개선을 요청하는 신호다. 불편한 목소리일수록 더 귀를 기울이고 소수의 의견일수록 더 깊이 경청해야 한다. 그것을 놓치면 행정은 주민과 멀어지지만 받아들이면 그것은 곧 변화의 동력이 된다. '찾아가는 복지'를 강조하면서 정작 주민의 목소리에 선을 긋는다면 이는 껍데기 행정에 불과하다.


경북도청신도시가 희망의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주민의 요구와 행정의 응답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더 많은 설명보다 더 깊은 경청이 필요하다. 주민의 목소리를 '우리 모두의 목소리'로 받아들일 때 신도시는 예천군의 자랑이자 경북의 중심 성장축이 될 것이다. 듣는 행정, 그것이 경북도청신도시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힘이다.


장석원 / 경북본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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