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대한민국 이렇게 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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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25 08:50  |  발행일 2025-08-25
박재일 논설실장

박재일 논설실장

트럼프가 내지른 관세(Tariff) 협상은 여러 상념을 불러 일으킨다. 세계 최강국, 1인당 국민소득 9만 달러의 미국이 악착같이 돈을 더 벌겠다고 나선 것은 일종의 배신감으로 다가온다. 지구촌 대개의 사람들이 느낄 법하다. 하기야 이건 협상이 아니다.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미국내 언론에서조차 트럼프의 '협박(Threat)'으로 이름지었다.


일단 기분이 묘한 측면이 있다. 첫번째 '한국이 많이 컸다'는 깨달음이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언제부터 미국의 강력한 견제구를 받아야 하는 나라가 됐나 하는 일종의 '국뽕' 같은 자부심 새어나온다. 사실 한국이 미국에 수출해서 버는 돈은 만만치 않다. 지난해만 해도 무려 660억 달러 흑자였다. 약 91조원이다. 그래도 그렇지 관세를 15% 선으로 낮추는 대가로 우리가 약속한 별건 투자는 물경 4천500억 달러, 620조원이다. 펀드나 대출, 정부 지급보증 같은 성격이 있으니 위험을 감수하고 돈을 내는 일반적 개념의 투자는 아니라도 어쨌든 엄청난 액수다.


지금의 2030 세대는 기억에 없을 것이다. 장년층이라면 알 것이다. 그들이 학생시절 쯤 박정희 대통령은 어쩌면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캐치프레이즈가 될 지 모를 비전을 내걸었다. '100억불(달러) 수출, 국민소득 1천달러' 였다. 1970년대 초반이다. 지금 트럼프에게 안겨주겠다고 한 달러의 40분의 1도 안되는 되는 수치가 국가 전체 수출 목표였다. 달러가치의 하락은 별개로 하고, 그만큼 우리는 성장했다. 1천불 소득은 박정희가 시해 당하기 2년전 1977년 달성했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76년)을 마친 다음해다.


또 하나 묘한 대목이 있다. 이번 관세협상에서 이재명 정부 협상단이 인정한 최고의 아이템은 조선이었다. 트럼프는 오래전 한국의 대우중공업을 찾아 조선 작업장을 둘러볼 만큼 심취했었다. 지금 미국의 조선업이 엉망이란다. 설계는 하는데 배를 만들줄 모른다. 이걸 파고 들어 트럼프 마음을 돌렸다나. 이른바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다. 한국이 나서 미국에서 배를 만들고, 투자도 하고 유지보수(MRO)까지 해주겠다는 약속이다. 조선업은 박정희가 중화학 공업이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는 원칙에 따라 시작한 당시로서는 산업혁신이었다. 그게 지금 만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박정희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 부류다.


15% 관세에 감지덕지 한 걸 견주면 과거 한·미 FTA는 역사의 금자탑 같다는 느낌도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협정을 맺었다. 좌파는 극렬 반대했다. 설상가상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소고기 수입을 전면 개방했는데 '광우병 소요'가 났다. 이번에 소고기 수입 문제가 민감한 이슈로 떠올랐지만 사실 그럴 계제가 아니라고 한다. 30개월령 이상 소고기는 이제 미국에서도 잘 생산하지 않는다. 우리가 개방해 봐야 들여올 것도 없다. 한국은 이미 미국 소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중 하나가 됐다.


10대 세계 경제 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은 솔직히 미국에 빚을 많이 지고 성장했다. 인텔, 퀄컴,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같은 회사에서 보듯 반도체는 원래 미국 작품이다. 환경문제와 노동 생산력이 떨어지자 이를 일본으로 줘버렸다. 일본도 급성장 한 뒤 소홀히 했고, 그게 한국으로 넘어왔다. 미국은 군함을 설계는 하는데 만들지 못하듯, 반도체도 원리는 장악하지만 만들기 힘든 나라가 됐다. 현재 K산업으로 불리는 원전이나 방위산업도 전부는 아니더라고 미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월이 많이 변했다. 이재명 정부 요직에 들어간 혹은 국회 좌석을 차지한 이들 중 한 때는 반미(反美), 매판자본 미제국주의를 외친 적이 있다. 심지어 미대사관 난입해 방화하고 사제폭탄을 터뜨린 학생이 집권여당 대표가 됐다. 그 미국을 상대로 어쩔수 없는, 약간의 굴욕적 협상을 이 정부는 첫 과제로 맞았고 겨우 정리했다.


가장 아른 거리는 것은, 트럼프가 협상타결 직후 쇼셜미디어에 던진 글이다. "그들을 만나 그들 국가(한국)의 위대한 성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물론 립서비스 일 것이다. 그래도 우린 포착해야 한다. 한국의 위대한 성공이란 대목이다. 그 영광이란 찬사를 우린 지금 누구에게 돌려야 하는지 곰곰히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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