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구인 비원뮤직홀 공연기획 PD
우리는 흔히 음악을 들을 때 익숙함을 먼저 찾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 오랫동안 기억 속에 각인된 영화음악, 혹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같은 곡들 말이다. 익숙한 선율은 안락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때로는 음악이 주는 낯섦 속에서 더 깊은 울림을 발견하기도 한다. 처음 듣는 곡에서 느껴지는 어색함, 이해하기 어려운 화성과 리듬의 전개가 오히려 우리 마음의 또 다른 문을 열어주곤 한다.
필자가 기획자로 있는 서구 비원뮤직홀은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음악 중 상당수는 청중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모차르트의 유명한 협주곡만이 아니라, 리스트의 곡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나 바로크 시대의 음악, 심지어 근현대 시대의 곡까지 무대에 오른다. 많은 관객들은 처음엔 조심스레 프로그램 북을 들여다보며 '이 곡은 어떤 곡일까' 궁금해한다.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면, 낯선 선율은 점차 귀를 사로잡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들의 마음을 흔든다.
필자는 이런 경험이 마치 '산책'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익숙한 길만 걷다 보면 마주치는 풍경은 늘 비슷하다. 그러나 한 번쯤 옆길로 들어서 낯선 골목을 걸어보면, 그곳에서 전혀 새로운 향기와 색깔을 발견하곤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쉽게 따라 부를 수 없는 선율,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가 오히려 청중에게 '듣는 법'을 다시 배우게 한다. 그 순간,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유의 장이 된다.
가곡을 예로 들어보자면, 짧은 한 편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은 언뜻 단조롭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시어와 화성, 그리고 호흡이 촘촘하게 얽혀 있다. 언어를 초월한 목소리의 울림은 청중에게 다가가 낯설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무대 위 성악가가 호흡을 고르고 첫 음을 내는 순간, 그 정적마저 음악이 된다. 쉼표의 긴장과 울림이야말로 낯선 음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무대에서 매번 느끼는 것은, 관객들이 '낯선 음악'을 마주할 때 보이는 표정의 변화다. 처음엔 다소 경직되어 있다가 곡이 끝날 무렵에는 눈빛이 환해지며 연주자들을 향한 박수를 칠 때는 그 안에서 새로운 음악적 기쁨이 배어난다. 그것은 단순히 한 곡을 알게 된 차원을 넘어, 예술을 통해 자기 내면의 또 다른 가능성을 만나는 순간이다.
문화산책이란 결국 삶 속에서 예술을 발견하는 여정일 것이다. 필자가 사랑하는 음악도 그렇다. 낯선 음악과의 만남은 우리를 조금 더 깊이 있는 세계로 이끈다. 청중이 용기를 내어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낯선 음악의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면, 그곳에서 분명 새로운 감동과 전율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음악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길모퉁이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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