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時時刻刻)] 경제유감 - 김빠진 사이다가 더 문제다

  • 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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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02 06:00  |  수정 2025-09-01 15:58  |  발행일 2025-09-01
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최근 몇 주간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기준을 당초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낮추겠다고 했고, 시장에서는 찬성과 반대의 논리가 맞선다. 찬성 측은 형평성과 부자 감세에 대한 우려를, 반대 측은 10억원이 무슨 대주주냐는 현실성과 연말에 '대주주 회피 매도'로 실제 세수 증대는 없고 시장에 혼란만 가져올 수 있다는 부분을 지적한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논리 싸움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준 자체가 아니다. 정부의 대응 방식이다.


대주주 기준 상향 입법 예고 직후인 8월1일, 코스피는 3.88% 급락했고 코스닥은 4% 넘게 하락했다. 이른바 '블랙 프라이데이'였다. 그 이후 정부는 기준에 대해 "숙고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고, 방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그 결과 시장도 활력을 잃은 채 몇 주째 표류하고 있다. 왜 그럴까?


사실 경제는 숫자가 아니라 신호다. 정책은 시장에 보내는 신호이고, 그 신호가 언제, 어떻게, 어떤 태도로 주어지느냐가 시장을 움직인다. 타이밍이 늦으면 신호는 효과를 잃고, 불확실성이 길어지면 신호는 왜곡된다. 그리고 이런 신호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가, 심리가 무너지는 순간,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이번 논란이 시장을 흔드는 것도 정부가 그 신호를 제대로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째, 경제는 타이밍이다. 정책은 시기를 놓치면 효과를 잃는다. 일본이 1990년대 버블 붕괴 뒤 금리 인하와 구조조정을 미루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맞은 것이 대표적이다. 대응의 타이밍을 놓치면 장기침체로 이어진다. 경제정책은 신호등과 같다. 빨간불과 초록불이 명확해야 운전자가 움직이듯, 정책도 시점이 분명해야 한다. 지금처럼 신호가 깜박거리면 시장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둘째, 경제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투자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세율 자체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협상이 수년간 번복되면서 기업 투자가 얼어붙고 본사가 해외로 옮겨 간 것처럼, 오락가락하는 정책은 그것만으로도 비용이 된다. 불확실성이 길어질수록 개인은 매수를 멈추고 기업은 투자 계획을 미룬다. 결국 시장의 활력이 꺼진다.


셋째, 경제는 심리다. 숫자가 아니라 기대와 공포가 시장을 움직인다. 1970년대 1차 오일 쇼크 때 실제 공급 차질보다 더 큰 불안이 유가를 폭등시켰듯, 심리는 위기를 증폭시킨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외환보유액 자체보다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불안이 먼저 뱅크런을 불렀다. 지금 외국인 매도세 역시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정부가 시장 친화적 기조를 끝까지 지킬 지에 대한 불안이 투자심리에 반영된 것이다. 투자자는 계산기보다 체온계로 먼저 반응한다. 심리가 흔들리면 외국인뿐 아니라 국내 투자자까지 발을 뺀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때 '사이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속 시원한 발언과 결단력이 정치적 자산이었다. 많은 국민은 여전히 그런 청량감을 기대한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정책은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는 김빠진 사이다와 같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이다 같은 결단이다. 단순히 기준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어떤 철학과 원칙을 갖고 시장을 대할지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명확한 로드맵, 예측 가능한 정책, 흔들림 없는 자신감이 있어야 경제는 다시 살아난다. 지금처럼 미봉책과 숙고만 반복한다면, 얻는 것은 정치적 소음 뿐이고 잃는 것은 경제적 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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