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호 사회 3팀장
포항은 한때 '철의 도시'로 불렸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포스코가 이곳에 뿌리내리면서 포항은 단순히 철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국가 경제의 척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거대한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쇳물, 그 위로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는 수십 년간 포항 시민들의 자부심이자 생계를 지탱하는 원천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뜨거웠던 심장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지난 2일, 이강덕 포항시장이 미국 워싱턴 D.C.의 백악관 앞에 섰다. 그의 손에 들린 피켓에는 "한국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를 멈춰달라"는 간절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일각에서는 한 명의 기초단체장이 강대국 미국의 정책을 바꿀 수 있을까, 혹은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의 진심 어린 절박함에 깊이 공감한다.
철강도시 포항은 현재 위기상황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1제강·1선재 공장 폐쇄, 현대제철 포항2공장 휴업, 1공장 중기사업부 매각됐다. 여기에 미국은 한국산 철강에 대해 50% 관세 폭탄을 때렸다. 이로 인해 포항 철강산업은 붕괴 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포항을 떠나고, 도시 전체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2013년 구미의 수출액은 367억달러로 대한민국 수출의 11%를 차지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이 구미를 떠나며 심각한 위기를 맞아야 했다. 2020년 당시 거제도는 대우조선해양 매각 등 조선업 몰락으로 인구가 급감했고, 집값은 반 토막이 났다. 포항도 미국의 철강 관세 폭탄이 계속된다면 도시 전체가 짧은 시간에 붕괴할 수도 있다. 아마도 이강덕 시장은 이런 위기상황을 예상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것은 아닐까.
이런 위기 상황에 정부는 지난달 28일 포항시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다. 이강덕 시장의 행동은 지역 경제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직접 미국 정부에 호소하는 것이다.
철강 산업의 위기는 비단 포항만의 문제가 아니다. 철강은 자동차, 조선, 우주항공, 건설 등 모든 산업의 핵심 소재이기 때문이다. 철강 산업이 무너지면 전후방 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또 대한민국 전체 산업 투자와 미래 성장동력까지 위협받게 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손실을 넘어, 국가 경쟁력 약화와 미래 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강덕 시장의 호소는 정치적 부담을 넘어, 지역 주민들의 삶을 지키려는 강력한 외침이다. 그의 행동은 미국이 한국을 핵심 안보 동맹국으로 여기면서도 한국산 철강에 관세를 부과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이는 동맹국에 대한 상식적인 조치를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의 외침에는 '자유로운 무역 질서 회복'이라는 더 큰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다른 국가들과의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강덕 시장의 행동은 한 도시의 어려움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와 국제 무역 질서의 불확실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무역 협상 결과에 만족감을 표했지만, 철강 산업은 여전히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정부와 정치권, 경제계 모두가 이강덕 시장의 절박한 호소에 귀 기울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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