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송하 박물관 휴르 (Museum HyuR) 관장
지명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그곳을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과 정서, 삶의 방식이 응축된 상징이다. 그러나 도시화와 행정 구획의 변화 속에서 어떤 지명들은 점차 사라지고, 결국 지도에서도 지워진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자리한 작은 산, 현재 '야시골 공원'으로 불리는 이곳도 오랫동안 '계룡산(鷄龍山)'이라 불려 왔으나, 이제는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도 드물다.
'계룡산'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조합이 아니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생명이며, 용은 하늘을 나는 신령한 존재다. 민간 풍수에서는 이 산의 형세가 닭이 용으로 승천하는 형국이라 하여, 출세와 도약의 기운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는 단지 음운의 조합이 아니라, 자연의 형세를 관찰하고 상징을 부여한 지역민들의 감각과 해석이 반영된 결과다. 충남 공주에도 같은 이름의 명산이 있지만, 대구의 계룡산 역시 그에 못지않은 의미와 정서를 품고 있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교감하며 장소에 이름을 붙였다. 닭과 용이 결합된 '계룡'은 작지만 큰 도약, 새로운 전환을 상징한다. 이런 지명은 단순히 땅을 부르는 말이 아니라, 삶의 방향과 희망을 담은 문화적 기호라 할 수 있다.
필자는 현재 이 옛 계룡산 자락 아래에서 '부엉이 테마 박물관 – 휴르(HyuR)'를 운영하고 있다. '휴르'는 부엉이를 뜻하는 옛말 '휴르새'에서 따온 이름으로,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꿰뚫어 보는 지혜로운 존재를 상징한다.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상징, 기억과 장소를 잇는 문화의 거점이 되기를 꿈꾼다. 필자는 부엉이의 속성에서 계룡산의 상징성과 닮은 점을 본다. 닭이 용이 되듯, 부엉이 또한 조용하지만, 강인한 변화의 상징이다. 잊힌 지명을 되살리는 일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온 땅과 정신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자, 앞으로의 길을 단단히 다지는 의미 있는 시작이다.
여송하 박물관 휴르 (Museum HyuR)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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