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전어가 불러낸 가을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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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11 14:20  |  발행일 2025-09-11

전어의 계절이 돌아왔다. 시집살이가 고되어 집을 나간 며느리도 전어 굽는 냄새에 발길을 돌렸다는 옛말이 있다. 억척스러운 삶마저 멈추게 할 만큼 향과 맛이 강렬했다는 뜻일 터다. 그런데 어쩌면 전어는 핑계였을 뿐, 사실은 선선한 바람결에 집에 두고 온 자식들이 그리워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맛이었든 계절이었든 전어는 가을의 상징이다. 9~10월 전어는 살이 오르고 지방이 올라 맛이 절정에 이른다. 이때 잡힌 전어는 뼈가 연해 뼈째 먹기에도 부담이 없다. 등푸른 생선답게 불포화지방과 칼슘이 풍부해 영양도 든든하다. 내장마저 고소해 따로 손질할 필요가 없으니, 며느리의 발길을 돌린다는 옛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올해 전어 가격은 예년과 다르다. 지난해엔 '금(金)전어' 불렸지만 지금은 반 토막이 났다. 수산시장에서는 ㎏당 평균 1만5천원 선, 산지 가격은 만원에도 못 미친다. 어획량은 줄었지만 집중호우로 축제가 취소되며 소비가 꺾인 탓이다. 덕분에 지난해엔 귀하디귀했던 전어가 올해는 대형마트 진열대에 넘친다. 물량을 늘리고 가격까지 낮췄으니, 소비자 입장에선 전어를 즐기기 더없이 좋은 시기다. 다가올 추석에 다시 오를지 모를 일이니, 지금이야말로 마음 놓고 사 먹을 때다.


착한 가격에 넉넉하게 전어를 샀다 해도, 막상 집에서 굽는 일은 쉽지 않다. 도톰하게 살 오른 전어를 불 위에 올리면 고소한 향이 번지지만, 식고 나면 이 냄새가 비린내로 변해 집안에 오래 남는다. 환풍기를 돌려도 쉽게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전어는 전처리가 중요하다. 손질한 뒤 우유에 10여 분 담가두면 비린내가 줄고, 소금이나 레몬즙으로 가볍게 밑간하면 풍미가 한층 살아난다.


비늘을 꼼꼼히 긁어낸 전어는 팬에 굽는 게 제격이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도 좋지만, 팬 위에서 기름이 지글거릴 때 퍼지는 향이 전어의 본맛이다. 지방이 많아 기름은 따로 두를 필요가 없다. 소금구이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지만 간장에 고추냉이를 풀어 찍으면 색다른 풍미가 난다. 된장찌개에 넣으면 구수한 국물에 전어 맛이 배고, 채소와 함께 조리하면 영양도 균형이 맞는다. 잘게 썬 전어를 초고추장에 무쳐낸 무침회는 어른의 입맛을 사로잡는 별미다. 기자 역시 어릴 땐 잔가시가 싫었지만, 지금은 전어의 고소함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도 어느새 그 맛을 즐길 만큼 나이를 먹은 셈이다.


전어는 늘 계절을 앞서 전한다. 여전히 한낮에는 무더위가 버티고 서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스미는 바람과 식탁 위 전어 한 접시가 가을을 불러온다. 유난했던 올여름의 무더위와 폭우의 흔적은 아직 남아 있지만, 계절은 제자리를 찾아온다. 전어 한 점에 가을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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