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음악은 기다림을 닮았다

  • 강구인 비원뮤직홀 공연기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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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16 06:00  |  발행일 2025-09-15
강구인 비원뮤직홀 공연기획 PD

강구인 비원뮤직홀 공연기획 PD

공연을 기획하는 일은 늘 시간과의 대화다. 음악은 순간에 울리지만,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획자와 예술가는 그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다. 기다림 속에서 음악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엔 단지 하나의 아이디어로 시작된다. 이 곡을 무대에 올리면 어떨까, 이 연주자가 이 작품을 해석하면 어떤 색이 묻어 나올까. 그런 상상들이 머릿속을 맴돌다 보면, 어느새 손에는 일정표와 연락처 목록이 들려 있다. 공연은 그렇게 현실이 된다. 아주 느리게, 아주 조심스럽게.


기획자로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이 곡은 너무 어렵지 않나요?"라는 질문이다. 어렵다.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예술은 늘 조금 어려운 곳에서 시작된다. 쉬운 감동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종종 일부러 조금 낯선 곡을 넣는다. 관객이 처음 듣는 곡, 연주자도 자주 해보지 않은 곡. 싹트기 전 봉오리 같은 그 낯섦 속에서 천천히 감정이 피어오른다.


공연 당일, 무대에 오르기 전의 긴장감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연주자도, 스태프도 모두 숨을 고른다. 그 순간은 마치 음악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 같다. 준비는 충분했는지, 마음은 열려 있는지. 무대에서의 첫 음이 울리는 순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우리는 몇 달의 기다림을 가져온 것이다.


음악은 기다림을 닮았다. 악보가 펼쳐지기 전의 고요함, 다음 음정을 향한 숨죽인 기대, 끝나지 않은 여운 속에 머무는 마음까지. 모두 기다림의 결이다. 4분짜리 음악의 여정을 헤쳐나가기 위해 악보 속 음표들은 책 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 것이다. 악보가 반대로 다시 덮힐 때까지.


공연이 끝나면 늘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오늘 음악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닿았을까?" 박수 소리의 크기나 관객의 표정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지다. 음악은 듣는 순간보다, 듣고 난 뒤가 더 오래 남는 법이니까. 기획자는 그 여운을 믿고 일한다.


예술은 결국 사람을 향한 것이다.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고, 공연은 상품이 아니라 경험이다. 기획자는 그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계산보다는 감각으로, 확신보다는 직관으로. 그래서 이 일은 늘 어렵고, 늘 아름답다.


필자는 오늘도 다음 공연을 준비한다. 어떤 곡을 고를지, 누구와 함께할지, 어떤 흐름으로 이야기를 만들지. 음악은 기다림을 닮았고,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나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기다림이 하나의 음으로 피어날 때, 공연은 마침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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