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칼럼]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라면 하는 게 맞다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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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19 08:28  |  수정 2025-09-19 09:18  |  발행일 2025-09-19
이재윤 논설위원

이재윤 논설위원

양도논법(兩刀論法)


'만일 네가 땅으로 내려가면 사람들이 증오하겠지만 하늘로 올라가면 신이 노여워할 것이다. 너는 내려가든가 또는 올라간다. 그러므로 너는 사람들의 증오를 받든지 신의 노여움을 받을 것이다.' 논리학에서 유명한 '양도논법'의 예시다. 양쪽에 칼이 있으니 어느 쪽을 택하든 칼날에 베인다. '트롤리(trolley·전차) 딜레마'도 비슷하다. 달리는 전차의 궤도를 바꾸면 다수의 인명을 살릴 수 있지만 바뀐 궤도에는 또 다른 1명의 목숨이 달려 있다. 궤도가 바뀌도록 레버를 당기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진퇴양난의 올무다.


그런데 죽기로 하고 달려들면 선택에 망설임 없다. 육참골단의 결기 앞엔 딜레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진보의 결연함이 그러하다. 이 싸움이 시작될 때 실은 성패의 반은 나 있었다. 진보는 죽기로 작정하고 덤빈 싸움이다. 보신(保身)이 몸에 밴 검찰과는 시작부터 달랐다. 그걸 검찰이 진즉에 알았어야 했다.


다 맞다


검찰개혁안에 대한 세간의 비판은 대체로 맞다. 너무 복잡해서 만든 사람도 모른다는 지적을 받는다. 제도가 복잡할수록 사건 처리는 어려워진다. 기관 간 사건 핑퐁은 다반사고 변호사 비용은 급증할 거란 주진우(국민의힘 의원)의 트집에 대꾸가 쉽지 않다. 한 기관이 수사권을 독점하는 건 개혁에 반한다는 지적(문무일·전 검찰총장)도 맞다. 검찰의 독점적 권한이 문제의 원인인데 이 권한을 경찰로 확대하다니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경찰 비대화와 '암장'(사건 묻어버리기)은 우려로만 그칠까. "위헌판결이 나면 그땐 어떡할 건가"라는 김종인(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의 물음은 곧 현실의 문제가 될 것이다. 노만석(검찰총장 직대)이 "헌법에 명시된 검찰이 법률로 개명 당할 위기"라고 숟가락 얹은 것만 봐도 검찰의 다음 수순을 알만하다. 수사를 하고 싶어서 검찰을 희망했는데 이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된 로스쿨생들. "이 정도면 취업 사기 아닌가요?"라는 이들의 항변엔 유구무언이다. 이 모든 지적이 대개 맞다.


다 맞지만 "NO"


세간의 비판은 다 맞지만, 검찰개혁을 하지 말자거나 검찰의 요구대로 개혁안을 수정하자는 덴 단연코 'NO'다. 이유는 딱 하나, 검찰을 못 믿겠다. 간장막야(干將莫耶)의 교훈이 그것이다. 제아무리 명검이라도 쓰는 사람의 성품과 재능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절세의 칼잡이라 할지라도 천둥벌거숭이에게 어찌 칼을 쥐여주겠는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치집단이 되어버린 검찰.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물론 어느 쪽을 택해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양도논법의 딜레마다.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라면 하는 게 맞다.


78년 만의 검찰청 해체. 사법개혁위원회 출범 이후 26년, 검경수사권 조정 논의 21년, 노무현 서거 16년 만의 힘겨운 결실이다. 윤석열 정부 3년 내내 자행된 수사·기소권 남용, 무소불위 검권(檢權)의 결정판 '관봉권 띠지 분실' 사건, 그때 국민이 최종적으로 돌아섰다.


최근 사법부와 검찰이 유독 '독립성'을 외친다. 유감이다. '독립성'이 사법부와 검찰의 최고의 가치인가. 아니다. 수단일 뿐이다. 무엇을 위한 수단인가? 사법부와 검찰의 독립은 재판과 수사의 '공정성'을 위해 존재한다. 훼손된 공정성엔 일언반구 없이 독립만 외치는 건 본말전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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