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사법부, 독립보다 중립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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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25 03:42  |  발행일 2025-09-25
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논설위원

삼권분립 하면 몽테스키외이고 몽테스키외 하면 '법의 정신'이다. '법의 정신'은 몽테스키외가 20년에 걸쳐 저술한 역작이다. 행정권·입법권·사법권 분립의 타당성과 정당성, 시대적 배경을 촘촘하게 엮어냈다. 근대국가 탄생을 추동했으며, 공화정과 민주주의 창발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권력의 속성은 원초적으로 야비하고 포만(暴慢)하다. 그러므로 통제가 필요하다. 통제받지 않은 권력이 독재로 표변한 흑역사는 우리 정치사의 소중한 경험칙이다. 국가권력 간 견제와 균형은 권력 통제의 민주적 방식이다. 그 명징한 예시가 삼권분립이다. 권력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다. 몽테스키외는 정치권력이 커질수록 개인의 자유가 위축된다고 봤다. 삼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쪽의 권력이 비대해지면 다른 한쪽은 쪼그라든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출권력 우위론'은 권력의 본질에 대한 오독이며, 삼권분립의 본령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권력 서열 언급과 민주당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 강행이 맞물리면서 '사법부 독립'이 화두로 떠올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독립보다 중립'이다. 사법부 독립은 양가적이다. 독립이 반드시 중립을 보장하진 않는다. 때론 독립이 편향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립의 가치는 불변이다. 사법부는 스스로 중립을 훼손하지 않았는지 반추해봐야 한다.


지난 10년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사건 180건의 평균 심리기간은 994일이다. 한데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경우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지 9일 만에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예의 대법원답지 않은 전광석화 속도전을 펼쳤다. 그 짧은 시간에 7만쪽에 달하는 재판기록을 다 읽었을까.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법원 상고심 형사사건 2만419건 중 원심판결이 변경된 사례는 1.44%에 불과하다. 통상적 심리기간과 파기환송 비율을 대입해보면 조희대 대법원이 바늘구멍 확률의 신공을 시전한 게 확실하다. 대선 직전, 유력 대선 후보에 대한 판결이 그랬다. 누가 보더라도 대선 개입 의심을 살 만한 정황이다. 이러고도 대법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 자부할 수 있겠나. 송승용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고언대로 이례적 초고속 파기환송에 대한 조희대 원장의 해명이 있어야 한다.


지귀연 부장판사도 사법부 불신의 한가운데 있는 장본인이다. 요상한 구속기간 계산법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풀어줬고, 내란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늑장 재판으로 구설에 올랐다. 박근혜 국정농단 재판의 주당 공판 횟수와 비교하면 지귀연 재판부의 속도가 더딘 게 확연하다. '침대축구' 빌미를 만든 셈이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은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이 법리상의 의문점이 있는 만큼 보통항고를 해 상고심에서 시정 여부를 가리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지귀연 부장판사 룸살롱 접대 의혹에 대한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의 '모르쇠' 행보도 납득하기 어렵다. 조사 착수 4개월이 넘도록 오리무중이니 그 속사정에 대한 궁금증만 증폭한다.


상호 견제가 가능한 삼권분립을 위해서도 사법부 중립은 필요하다. 사실상 '삼권 합일' 체제였던 유신시대의 2차 인혁당 사건 판결은 사법부 잔혹사로 남았다. 사법부 독립과 중립은 함수관계이지만 하릴없이 정권에 중립을 헌납한 과거를 법원과 정부여당은 기억해야 한다. 중립을 견지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사법개혁의 제1 과제가 돼야 한다. 논설위원


권력의 속성 야비하고 暴慢


국가권력 균형 민주적 통제


사법부 불신 자초 반추해야


상호 견제의 삼권분립 위해


중립 지킬 제도적 장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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