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6일 경북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열린 '2025 APEC 문화산업고위급대화 환영만찬 리셉션' 현장 모습. 경북도 제공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한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세계의 이목이 경주로 쏠리고 있다. 무역과 안보, 첨단기술 분야에서 대립중인 미국과 중국 G2정상이 정상회의 기간 양자회담을 가질 예정인 만큼 이번 APEC은 국제사회의 새로운 흐름을 가늠하게 될 외교무대가 될 전망이다. 더욱이 북미정상 대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정부와 함께 행사를 준비 중인 경북도는 '현장점검체제'로 전환, 성공적인 회의운영을 위한 고삐를 죄고 있는 중이다. 또한 경주가 국제적인 관광 도시로 떠오를 수 있도록 '포스트 APEC' 준비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회원국 AI 협력과 인구 구조 변화 대응
아시아, 태평양 연안지역 국가들로 구성된 APEC은 지역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세계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회원국을 합하면 세계 인구의 37%, 상품교역량의 49.1%, GDP의 61.4%를 차지할 정도다.
이 때문에 회원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APEC 정상회의는 국제정세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더욱이 올해 정상회의는 미-중 전략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정세 불안, 북핵 고도화 등 난제가 중첩된 시기에 열리는 만큼 국제적인 관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내일'이란 주제로 연결, 혁신, 번영이라는 세 가지 중점 과제를 추진한다. 아태지역 무역투자 활성화와 물리적, 제도적, 인적 교류를 통한 연결성을 강화하고 디지털 격차 해소·인공지능(AI) 협력을 통한 디지털 혁신 촉진,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성장·번영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특히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 핵심 주제로 'AI 협력'과 '인구 구조 변화 대응'을 내세우고 있다. AI 기술의 무한한 잠재력을 포용적,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구현하기 위한 방향성을 논의하고, 대부분 국가들이 저출산·고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인구 문제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 글로벌 '통상 전쟁' 분수령 될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APEC 정상회의 기간 양자회담을 가질 것으로 보여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핵심 주제 외에 각국 정상들이 다룰 의제 중 주목도가 높은 분야는 통상 관련이다. 미국발 관세 문제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APEC 회원국 간 협력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특히 다자간 무역체제에 대한 지지, 아태지역 무역자유화란 APEC의 전통적 지향점을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
최근 보호무역주의 흐름이 강해지는 흐름 속에서 2024년 페루, 2023년 미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는 세계무역기구 중심의 다자간 무역체제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이 도출됐다. 올해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 글로벌 무역체제를 뒤흔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재선 이후 처음으로 회의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대신 정상회의 기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글로벌 통상 전쟁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미중 간 상호관세조치 유예 기간(11월 10일)이 임박한 만큼 회담이 이뤄진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APEC 정상회의가 글로벌 통상질서의 방향을 설정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여전히 유리한 조건을 성사시키기 위한 미-중 간 협상은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를 내세울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의 전략이 아직 마련되지 않는 것과 관련 '미·중의 협상 내용에 따라 견제 수위를 조정하려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두 정상을 국내로 초청해 미-중 타협의 장을 마련한다면 그 자체로도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끌어올리는 의미가 있다. 더욱이 경주에서 양자회담이 진행되면 세계에 경북과 경주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에 경북도는 경주박물관에 조성한 신축 건물에서 미-중 양자회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 차원의 협조를 요청했다. 앞서 정부는 경주박물관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정상회의 만찬장으로 쓰려고 했으나 수용 인원 문제 등으로 새로운 활용 방안을 모색 중인 상태다.
◆ 북미 깜짝 회동과 한반도 비핵화 문제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외교전도 정상회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이해관계국 정상들이 한곳에 모이는 데다 북한이 미국과 조건부 대화 의지를 보이고 있어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8월 26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올해 안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희망했고, 이후 김 위원장도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거론하며 대화 의지를 밝힌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한 바 있다. 북미 정상의 '깜짝' 회동이 성사된다면 정상회의 의제로 한반도 문제가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한반도 문제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환기하고 북핵 정책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촉구할 기회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APEC이 기본적으로 경제 문제를 다뤄왔던 회의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반도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루기보단 의장성명 발표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2005년 부산 APEC 당시에도 정상선언문과 별도로 성명을 발표했다. 문서를 내는 대신 수위를 조절해 노무현 대통령이 구두로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 포스트 APEC, 경주를 세계적인 도시로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최근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추진상황 점검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경북도는 이번 APEC 정상회의를 통해 경주를 글로벌 10대 관광도시로 키울 심산이다. 한국 문화의 색다른 매력을 만끽 할수 있는 도시, 다시 찾고 싶은 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해 세계인의 발길이 이어지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이번 정상회의를 단순한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역발전과 관광 활성화의 계기로 삼기 위해 '포스트 APEC사업'을 적극 추진한다.
구체적으론 정상회의장과 미디어센터 등 주요 시설은 APEC 유산(레거시)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세계 각국 정상들과 글로벌 기업 CEO 등이 다녀간 시설물을 적극 활용해 관광자원화하고, APEC 기념공원과 문화의 전당을 조성해 지역민은 물론 방문객들이 다양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또 경주역사문화포럼을 국제적인 포럼으로 육성해 세계적인 석학들과 문화 전문가들이 정례적으로 경주에 모여 지속가능한 미래와 인류의 행복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주 APEC 정상회의는 신라 천년의 찬란한 유산을 계승한 경북을 세계에 알리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경북만이 할 수 있고, 경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역대 최고의 APEC 행사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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