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커피 타고, 짐 나르고, 순찰 돌고…대구시민 일상에 스며든 ‘로봇’

  •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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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12 21:13  |  수정 2025-10-12 22:14  |  발행일 2025-10-12
오는 22일부터 25일까지 대구 엑스코에서 열리는 FIX 2025에서 시연될 휴머노이드 복싱 장면. 이처럼 로봇산업은 서비스·산업현장을 넘어 스포츠까지 넘보는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대구시 제공>

오는 22일부터 25일까지 대구 엑스코에서 열리는 'FIX 2025'에서 시연될 '휴머노이드 복싱' 장면. 이처럼 로봇산업은 서비스·산업현장을 넘어 스포츠까지 넘보는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대구시 제공>

대구 로봇산업의 성장세가 무섭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로봇의 일상화'는 먼 세상 일로 여겨졌지만, 현재 로봇은 대구시민 일상 속에 빠르게 파고들었다. 식당에서 서빙하고 공항에서 길 안내하는 로봇은 이미 친숙한 존재다. 바리스타 수준으로 커피를 내리고, 산업현장의 순찰을 도는 등 사람이 하는 일의 상당수를 로봇이 거뜬히 해낸다. 이런 놀라운 솔루션들이 대부분 '메이드 인 대구'라는 데 의미를 더한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로봇산업이지만, 인재 수급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t 짐 얹고 과속방지턱도 '거뜬'


아이엠로보틱스<주> 오성모 연구소장이 자사의 대표 로봇인 아이소나(ISONA) 새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엽 기자

아이엠로보틱스<주> 오성모 연구소장이 자사의 대표 로봇인 '아이소나(ISONA)' 새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엽 기자

대구산(産) 자율주행로봇(AMR)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 로봇은 본인의 5배 무게를 들고도 목표지점까지 이동하는데 오차는 최대 3㎜에 불과하다. 대구 달서구에 있는 산업용 로봇기업 아이엠로보틱스<주>의 대표작 '아이소나(ISONA)' 이야기다.


아이소나는 물류창고에서 쓰이는 파레트 운반 전용 자율주행로봇이다. 이 로봇은 한 번에 최대 2t 무게의 파레트를 옮길 만큼 강한 하중을 견딘다. 로봇 자체의 무게가 대략 300~500㎏이니 본인의 4~5배에 달하는 무게를 거뜬히 드는 셈이다. 이처럼 무거운 물건을 싣고도 목표 지점까지 장애물은 물론, 사람 주위로도 안전하게 배달을 완료하는 똑똑한 로봇이다. 주행 성능도 압도적이다. 대부분 AMR은 요철, 경사, 파임 등 바닥이 평탄하지 않을 경우 운행 장애가 발생해 바닥 평탄화 작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이소나에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서스펜션이 적용돼 추가적인 바닥 공사 없이 산업현장을 오갈 수 있다.


아이소나의 또 다른 장점은 뛰어난 범용성이다. 리프트·컨베이어·협동로봇 등 사용자의 니즈에 맞게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만약 이동하면서 용접 작업을 하고 싶다면 아이소나에 로봇팔만 장착하면 된다. 아이엠로보틱스는 최근 아이소나의 등판 능력과 내구성 등을 강화한 실외용 제품 라인업을 추가하며 방산업계의 러브콜도 한 몸에 받고 있다. 아이엠로보틱스 오성모 연구소장은 "아이소나는 고중량 물품 및 파레트 이송이 가능하고, 공장 환경에 상관없이 사용 가능해 많은 기업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면서 "뛰어난 효율로 불과 1~2년 안에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본체부터 정밀부품까지…없는 게 없는 대구 로봇


'AI 로봇 선도도시' 대구의 로봇 라인업은 화려하다. 특히 로봇 본체부터 모션·정밀부품, AI·자율주행·모빌리티 등 모든 업종군을 갖췄다. 먼저 국내 산업용로봇 시장 점유율 1위인 HD현대로보틱스는 대구 로봇 생태계의 핵심 중추로 꼽힌다. 산업용 수직관절로봇과 LCD 운반용 로봇 등을 연간 1만대 넘게 생산하고 있다. 협동로봇 시장에서 세계 5위권의 점유율을 기록중인 두산로보틱스도 빼놓을 수 없다. 두산로보틱스는 대구를 'AI로봇 수도'로 도약시키기 위한 '대구 로봇 혁신생태계 조성 MOU'에도 참여하는 등 지역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중이다. 세계 4대 산업용 로봇기업인 일본 야스카와의 한국법인 한국야스카와전기<주>도 대구에 대규모 로봇센터를 운영 중이며, 중소·중견 제조 현장에 최적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뉴로메카도 업계 신흥 강자로 꼽힌다.


로봇산업 핵심부품 기술 보유기업들도 많다. 첨단산업용 부품 및 소재 전문기업인 성림첨단산업<주>은 고성능 영구자석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서보모터와 모션컨틀로러 자체 기술을 보유한 LS메카피온은 최근 출범한 'K-휴머노이드 연합'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도 아진엑스텍(모션제어칩), 다이소셀(토크센서) 등이 핵심부품 기술 보유 기업으로 꼽힌다.


대구 중견기업들의 로봇 업종 전환 러시도 눈여겨 볼만하다. 올해 2분기 지역 시가총액 5위 기업인 에스엘<주>은 지난해 로봇 테스크포스를 신설하고, 이동형 양팔협동로봇 개발에 뛰어 들었다. 자동차부품 전문기업 에스엘의 로봇기업 변신은 최근 국가 4대 AI 거점도시로 지정돼 글로벌 AX(AI 전환) 연구개발 허브로 도약하려는 대구의 대표 사례로 주목 받는다. 쌀통 등으로 시민에게 익숙한 삼익THK도 로봇 업종 전환으로 체질 개선을 이룬 사례다.


대구기업 도구공간이 개발한 순찰용 로봇 이로이(iroi)가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검체 이송을 준비하고 있다. <도구공간 제공>

대구기업 도구공간이 개발한 순찰용 로봇 '이로이'(iroi)가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검체 이송을 준비하고 있다. <도구공간 제공>

스타트업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 경쟁도 볼만하다. <주>도구공간은 AI 기반 자율주행 순찰·보안 로봇 개발에 착수했다. AI 자율주행 로봇이 산업현장 등 도시 주요 시설을 홀로 순찰하는 방식이다. <주>알피는 도장작업에 필요한 로봇을 개발해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도로 노면표시, 벽화, 건설, 방수, 트레일러 도색, 외벽청소 등 활용 분야도 다양하다. <주>아이로바는 자율주행 기술을 기반으로 한 로봇 캐디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같은 대구 로봇기업들의 활약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2023년말 기준 대구에 뿌리를내린 기업은 251개사(社)로, 수출액은 2천713만달러(한화 384억원) 규모다. 전국 17개 시· 도중 경기(8천287만달러)와 부산(3천608만달러) 다음 수준이다. 성장세는 더욱 무섭다. 지난 10년간 대구 로봇산업 수출액 연평균 증가율은 39.7%로 부산(12.6%), 경기(11.3%) 등 경쟁 지자체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AI로봇 글로벌 혁신특구와 국가로봇테스트필드가 본격 가동되면 '대한민국 로봇 수도 대구'의 꿈도 머지않았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기업은 느는데 일할 사람이 없다


이처럼 대구 로봇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이들 기업에서 일할 지역 인재 수급은 원활하지 않다. 지난 8~9월 만난 지역 로봇 스타트업 대표들은 대부분 인재 수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재 대구권 소재 대학 중 로봇공학전공을 갖춘 곳은 경북대, 계명대, 영남대 3곳뿐이다. 이들 대학에서 매년 150~200명의 로봇인재가 배출된다. 이는 전국 상위권 이공계 대학이 밀집한 서울 정도를 제외하면 굉장히 우수한 수준이다.


다만, 문제는 눈높이다. 일반적으로 로봇 현장에 바로 투입되는 실력을 갖추려면 학사 과정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로봇공학은 기계, 전자, 제어, 코딩 등 공학의 모든 분야를 섭렵해야 하는데 학부에서는 기본 과정만 마치기도 빡빡하기 때문이다. 대학원까지 사실상 6년의 커리큘럼을 마친 로봇인재의 눈높이에 맞는 급여를 스타트업에서 맞춰주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는 로봇 인재도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최소 6년에 달하는 교육과정을 버티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어서다. 물론, 학부 과정만으로도 로봇기업에 취업할 순 있지만 스타트업에서 원하는 개발인력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계명대 유승열 교수(로봇공학전공)은 "대구권 대학의 로봇인재 정원은 많지만, 정작 로봇 전문인력이라고 할 만한 석사 수료자는 정원의 20~30%에 불과한 게 현실"이라며 "학비나 연구비 지원 등 유인책도 대부분 학부과정에만 몰려 있다. 시장 규모에 맞는 인재 수급을 위해서는 전문인력 양성 사업이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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