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산(産) 로봇들이 산업현장을 넘어 시민의 일상에 녹아들고 있다. 로봇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면서 다른 로봇과 대화하고, 가사노동까지 로봇에 맡기는 일상이 머잖았다. 공장·창고 등 제한된 환경인 산업현장과 달리 인간과 직접적으로 섞이는 일상에서는 더 고도화한 AI(인공지능) 지능 및 로봇 기술력을 요한다. 그 벽을 넘어선 대구 스타트업들은 국내는 물론,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철수 <주>유엔디 대표가 유엔디 네이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엽기자
◆로봇손 자유자재 갈아끼우는 '만능 손목'
2013년 대구 성서산업단지에서 출발한 <주>유엔디는 로봇 자동툴 체인저를 개발·상용화하는 딥테크 스타트업이다. 로봇 자동화의 핵심인 '엔드이펙터(End Effector)' 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해 로봇업계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으로도 불린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유엔디는 2023년 비수도권 최대 IT(정보기술) 집적지인 수성알파시티로 사옥을 옮겼고, 올해는 '대구시 우수 스타기업'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등 명실상부한 대구 대표 로봇기업으로 성장했다.
유엔디의 로봇 자동툴 체인저 '맥봇(MACBOT)'은 산업현장의 AX(인공지능 전환)를 이끌 중요한 열쇠로 평가받는다. 현재 제조환경은 대량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바뀌는 추세다. 로봇 1대가 하나의 공정만 맡던 예전과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에서는 멀티 공정이 필수인데, 이를 위해서는 로봇팔 끝단에 달린 '로봇핸드'를 계속해서 교체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원하는 로봇 공정을 구현하기 위해 로봇이 스스로 가장 적합한 장치를 갈아 끼우는 과정이다.
이 같은 공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유엔디의 핵심 코어 기술인 '강자성체 자기회로 설계 및 제어기술'이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자기 경로를 원하는 대로 보내고 바꾸는 '스위칭 마그네틱(Switching Magnetic)' 기술을 구현했다. 맥봇은 전기를 차단하더라도 자력을 유지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툴체인징 과정에서 공정 안정성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게 한다. 배터리 기반 DC(직류) 제품이라는 점도 경쟁제품과 차별화되는 요소다. 경쟁 제품들은 AC(교류) 기반이어서 복잡한 배선 및 전원이 동반되나, 맥봇은 짧은 시간 동안만 전기를 사용해 도킹과 툴 교체를 무선으로 수행할 수 있다. 이동형 로봇 플랫폼과 결합 시 뛰어난 기동성과 유연성을 제공해 산업 현장에서의 적용성을 크게 높였다는 게 유엔디의 설명이다.
맥봇의 범용성은 무궁무진하다. 자동차·로봇 등 일반 제조 현장은 물론, 푸드테크 산업에서도 맥봇을 주목하고 있다. 한 대의 로봇이 여러 가지 요리를 하려면 로봇핸드 교체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실제 유엔디는 사옥 내 '로봇 푸드코트'를 통해 상용화 검증을 마친 상태다. 로봇개와 쿠킹 로봇 등에서도 맥봇의 전망은 밝다.
현재 맥봇은 국내에선 경쟁자가 없다. 미국, 독일, 일본 선진 로봇 제조사들이 독점하고 있는 로봇툴체인저 시장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내년 1월 미국에서 열리는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를 시작으로 최소 7곳 이상 해외 전시회에 진출할 계획이다. 기업공개(IPO) 절차도 순조롭게 추진 중이다. 유엔디 이철수 대표는 "유엔디는 제가 좋아하는 영어 두 단어인 '유니크(Unique)'와 '디프런트(Different)'의 합성어로, 차별화된 기술로 독보적인 기업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며 "로봇도시 대구의 자부심을 바탕으로 대구 스타기업으로 지역 인재들과 함께 성장하며 세계적인 로봇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윤덕호 <주>엠디엑스 대표가 자사의 바리스타 로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엽기자
◆바리스타보다 커피 잘 내리는 로봇
대구 수성구 알파시티에는 '무인다방'이라는 카페가 있다. 이 카페에서는 로봇이 주문을 받고, 로봇팔을 활용해 직접 커피를 만들어서 손님에게 제공한다. 로봇이 내려준 커피를 마신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사람이 타준 커피보다 낫다." 사람보다 맛있게 커피를 만드는 로봇은 대구 로봇기업인 엠디엑스<주>의 작품이다.
엠디엑스표 바리스타 로봇의 지향점은 간단명료하다.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퀄리티의 커피를 제공하는 것이다. 불과 5년 전쯤 국내에서도 육추관절 로봇을 베이스로 한 바리스타 로봇 붐이 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로봇 1대당 가격이 수천만원에 달하는데, 수익성은 그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리스타 로봇에 '오버스펙'은 필요 없다는 게 엠디엑스 윤덕호 대표의 지론이다. 윤 대표는 "바리스타 로봇은 반도체 웨이퍼 이송로봇과 형태가 거의 비슷한데 정밀 공정이다 보니 가격이 비싸다"며 "커피 한잔 전달하는데 그런 정밀함은 필요없다. 자체 기술 개발을 통해 기회비용을 낮추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맛과 퍼포먼스는 놓치지 않았다. 십수년간 전국의 다양한 커피를 맛봤다는 윤 대표는 1세대 로봇부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 바리스타 커피에 버금가는 맛을 만들어냈다. 그는 "맛에는 타협이 있으면 안 된다. 아주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입맛이 까다로운 와이프의 평가를 통과한 제품들만 시장에 내놓고 있다(웃음)"며 "퍼포먼스에 있어서도 고객에게 인상적인 움직임을 표현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저렴하면서도 정확한 이송체계를 갖춘 엠디엑스의 바리스타 로봇은 시장에 빠르게 안착했다. 초기 제품 판매를 통해 전국 30개소의 POC(시험매장)를 구축했고, 이 수익을 바탕으로 로봇 플랫폼 개발에 투자하는 캐시플로우(현금흐름)를 확보했다. 작년 매출 10억원을 돌파했으며, 올해는 신용보증기금 지원프로그램인 '리틀펭귄'에 선정됐다. 윤 대표는 "올해 첫 참가했던 미국 CES에서 현지 기업과 MOU를 체결하는 등 북미시장 진출을 본격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사·돌봄 분야도 곧 로봇시대 올 것"
전문가들은 산업현장 다음으로 로봇이 적용될 분야로 가사 및 돌봄 분야를 꼽는다. 계명대 유성열 교수(로봇공학전공)는 "가사노동 분야의 경우 해외에서는 이미 시범적인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르면 5년 이내 가사노동 보조로봇이 상용화될 것"이라며 "돌봄 분야 로봇도 현재는 모바일 형태 혹은 간단한 대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곧 휴머노이드 형태로 출시돼 실제 간병인을 대체하는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다만, 로봇의 발전을 규제가 가로막아선 안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휴머노이드에 대한 규제가 없어서 산업 현장에 적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서 "로봇이 일상으로 넘어오면 안전 등 여러 인증 절차가 필수다. 기업들이 이런 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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