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논설위원
# 살벌한 여의도 풍경
2025 국회 국감 현장은 난장(亂場)이다. 여야 불문 표독한 언설을 쏟아낸다. 반말에 때론 쌍욕까지 내뱉는다. "에휴, 이 찌질한 놈아" "맞아 볼래. 옥상으로 올라와""너한텐 반말해도 돼". 삿대질과 드잡이도 익숙한 풍경이다. 막말과 거친 언사뿐 정책 질의와 민생 논의는 실종했다. 국정감사가 강성 지지층과 유튜브를 의식한 홍보 행사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그래서 나온다. '쇼츠 국감'이란 신조어의 함의가 계면쩍다. 팬덤 정치가 고착화하면서 극단 세력의 문고리 권력을 자처하는 '정치 환관'들의 막장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정기국회 개회일부터 정쟁은 예고됐다. 국민의힘의 상복 드레스 코드는 그 상징적 장면이다. 국힘은 민주당의 한복 코드를 "정치적 쇼"로 비하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완전한 내란 척결"을 외쳤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열심히 싸운 분이 공천받을 것"이라며 투쟁을 독려했다. 법사위는 파행을 거듭했고 언어 도발이 난무했다. "윤석열 오빠"(추미애 위원장) "초선은 가만히 앉아 있어"(나경원 의원).
아노크라시는 autocracy(독재)와 democracy(민주주의)의 합성어다. 바버라 F. 월터 UC샌디에이고 교수는 저서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 "특정 집단의 정치적 배제, 소셜 미디어를 통한 분열 확산 등 네 가지 징후가 있을 때 아노크라시가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국회가 딱 그런 형국이다.
# 팬덤 비위 맞추려 자충수
장동혁 대표의 윤석열 전 대통령 면회는 강성 지지층의 신뢰를 더 강고히 하겠단 복선이 깔렸다. 하지만 '내란 정당' 프레임을 깨뜨려야 할 제1야당 대표의 자충수일 수 있다. 민주당의 내란전담 재판부 설치 검토 역시 팬덤을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 실익 없었던 '조희대 청문회' 강행도 '쇼잉' 성격이 짙다. 자극적이고 간명한 문구로 팬덤의 흡인력을 높이기도 한다. '내란 정당' '부동산 테러' '경제 계엄령' '매국 계약' 같은 어휘들이다. 굳이 장황한 내러티브가 필요없다.
정치가 팬덤에만 매몰하면 국민의 존재감은 초라해진다. 김난도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트렌드 코리아 2026'의 10대 트렌드 중 하나가 필코노미다. feel과 economy의 합성어다. 소비자의 기분이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동인이 되는 경향을 말한다. 필코노미 시대엔 소비자 기분을 배려하는 기업과 서비스가 뜰 수밖에 없다. 한데 우리 정치는 국민과 유권자의 기분을 살피지 못한다. 연신 국민 기분을 상하게 한다. 여의도의 신(新)정치문법은 극단 아니면 막장이다. "정치 때문에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라는 하소연이 나올 법하다.
# 해법은 없나
팬덤보다 국민, 당원보다 국민을 섬겨야 한다. 팬심·당심보다 민심을 받들어야 한다. 극단의 지지층보다 중도층을 의식해야 한다. "정당은 당원의 것"이라는 폐쇄적이고도 고루한 인식은 구태스럽다. 국민 세금으로 충당되는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 그런 말이 나오나. 6·3대선이 치러진 올해 양대 정당에 지급되는 선거보조금과 선거보전비용만 1천500억원에 이른다. 작금의 민주·국힘처럼 강성 당원에 휘둘리면 정쟁이 잦아들기 어렵다. 당 대표와 총선·지방선거 후보 선출 방식을 완전 국민경선으로 바꾸는 것도 민심에 부합하는 방책이다. 정책 입안 및 법률 입법 과정에서 여야의 교집합을 넓혀 협치의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가장 나쁜 정치는 극단 세력에의 부화뇌동이다. 논설위원
유튜브 의식한 '쇼츠 국감'
'정치 환관' 막장 행태 가관
지금 국회는 아노크라시
강성당원에 휘둘려 정쟁만
여야, 정책 교집합 넓혀야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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