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10월 두 번째 월요일은 캐나다 추수감사절 (Canadian Thanksgiving)이고 주말부터 연휴이다. 전날인 일요일부터 눈이 내렸다. 보통은 10월말 핼로윈 무렵에 첫눈이 내리고, 재작년인가는 크리스마스 지나서 첫눈이 내려 눈이 없는 브라운(brown) 크리스마스라고 사람들이 자랑했었는데, 10월 12일에 첫 눈이라니! 엄밀히 말하면 10월 상반기인데 너무한 거 아닌가. 이제 웬만한 날씨에는 불평 안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싶었는데 이건 좀 센데. 이틀쯤 싫고 짜증이 났다. 다행히 이후 다시 화창한 가을날씨가 이어졌다.
교직원 중 한명이 10월초 결혼한다고 축하카드에 메시지를 남겼고, 다른 직원 방에 놀러갔다가 내년 초 둘째 아이출산 예정이란 얘기를 들었다. 와우, 너무 축하해. 여름방학 지나고 왔더니 C는 결혼을 하고 너는 둘쨰를 가졌고 다들 인생에 큰 변화가 있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아. 그녀가 말했다, 넌 유럽여행을 한달이나 갔다왔잖아. 그건 뭐 그렇게 특별한 게 아닌걸, 가족이 새로 생기는 거에 비하면. 유럽여행에 로망이 큰 것도 아니고. 뭔가 내 삶에 결핍이 있는 것 같고 좀 우울해졌다.
대학 학생회 행사에 참가했다가 우리 주 작은 마을 출신인 학생과 대화를 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현관문을 잠궈본 적이 없어요. 이웃집에도 벨 누를 필요없이 그냥 들어가고. 그런데 도시에 오니 자전거도 도둑맞지 않도록 잠그라고 하고 스트레스 받아요. 제가 다닌 학교는 전체학년이 열 몇명이라 한눈에 다 들어왔는데 대학은 수업같이 듣는 학생수도 많고요. 제 평생 교실에서 교수님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떨어져서 앉아 본 적이 없어요! 그렇구나. 나에겐 더 작은 도시에선 살 수 없을 것처럼 충분히 작은 도시인 사스카툰이 네겐 눈뜨면 코 베간다는 서울처럼 복잡한 '도시'이구나. 같이 웃었다.
동료들과 식사자리에서 자전거 얘기가 나왔다. 자전거로 통근하는 사람들도 많고 취미나 운동삼아 타는 사람들도 많은데 한 동료가 본인소유 자전거가 4개나 된다고 했다. 마운틴 바이크(산악자전거), 그래블 바이크(비포장도로 주행도 가능) 등등. 가장 비싼 건 800만원 정도 주고 샀단다. 또 다른 동료는 파트너와 두 사람이 12대의 자전거를 갖고 있다고. 뭐? 한참을 웃었다. 세상에, 자전거에 그렇게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니!
가끔, 난 어쩌다 이렇게 나와는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들, 모든 것이 생소한 곳에서 살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새로운 경험과 그를 통해 끊임없이 나를 확장하고 성장시키는 게 중요해서란 서사가 수용될 때가 있고, 때로는 그 '다름'에서 오는 '소속되지 못함'의 느낌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분명 삶의 순간순간, 그 때의 최선을 선택해왔는데 그 결과로 빚어진 현재의 삶은, 내가 원한다고 생각했던 삶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것, 그 괴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년의 과제일수도 있겠다.
90세가 넘은 동료의 노모가 입원을 하셨다. 저녁마다 식사시중을 드느라 일상의 패턴에 비상이 걸린 그녀에게 물었다. 연세드신 부모 케어하는 건 너희에게도 걱정거리니 아니면 사회제도에 대부분 맡길 수 있니? 그녀가 말했다. 걱정거리지. 더구나 이제 내 자녀들도 자식이 있어서 손주들도 가끔 봐주고 도와줘야 하니까. 샌드위치 세대라고, 때로는 상추가 되어주고 때로는 햄이 되어주고 그래야 해. 이런 걸 보면 또 사람사는 건 어디나 다 비슷하구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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