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규 사회2팀장
2027학년도부터 지역 의사를 별도 선발해 10년간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가 시행된다. 기존 의대와 공공의대 정원을 떼어 지역 의사로 충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취지만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지금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을 해결하려는 제도인가'라는 근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의료 위기는 지역 간 격차보다 전공 간 붕괴가 먼저다.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는 이미 적색경보가 켜져 있고, 내과·외과도 위험수위를 넘었다. 지역 의료가 흔들리는 것도 특정 전공이 사라져서다. 지역의사제는 이 핵심을 비켜간다. 전공 배분은 고려하지 않고 '지역에서 일할 일반의'를 대량 양산하는 구조다.
실제 현장은 심각하다. 산부인과 개원 1천곳 이상이 분만을 하지 않는다. 폐업률은 104%에 달한다. 분만기관은 줄고, 전문의는 본인 전공 대신 일반 진료로 이동한다. 이 현실이 의대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전공의 지원은 더 줄어든다. 전문의 배출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지역 의료 공동화는 더 뿌리 가 깊다. '병원이 없어 환자가 서울로 간다'는 설명은 반만 맞다. 정확히 말하면, 환자가 서울을 선택하기 때문에 지역 병원이 사라지는 것. 삼성서울병원 외래 환자 중 지역 환자가 72%, 아산병원은 68.3%, 성모·서울대·세브란스도 절반이 넘는다. 비수도권 환자의 수도권 '빅5' 이용은 최근 2년간 11.8%나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사제는 지역 의사 부족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의사를 고용할 병원도 없다. 지역 병원의 어려움은 의사 숫자가 아니라 환자 부족에서 비롯된다. 환자가 없으니 병원은 문을 닫고, 병원이 없으니 젊은 의사가 일할 곳도 없다. 결국 지역 의사에게 남은 선택지는 개업뿐이다. 개업한다고 환자가 몰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환자들이 병원 입구에서 출신를 따지는 나라에서 '지역 의사제 출신'이라는 간판은 약점이 될 수 있다. 공공의대·공공의료원 확충도 능사는 아니다. 성남의료원은 매해 400억~500억원 적자를 낸다. 성남시처럼 재정 여력이 있는 지자체조차 버거운 규모다. 남양주 등이 300병상급 공공병원을 앞다퉈 추진하지만, 환자가 찾아오지 않으면 적자만 계속 누적될 뿐이다.
해결책은 있다. 지역에서 일할 전문의를 확보하기 위한 강력한 인센티브, 의료사고 형사 면책, 민사 책임의 보험 처리 특례 등이 그것이다. 환자가 줄어든 지역에서 전문의가 버틸 수 있도록 튼실한 안전망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다. 국내에서 주치의 제도나 게이트키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민은 선택이 제한받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서울로 이동하는 수요 자체를 전제로 한 정책이어야 한다. 정치권은 이 전제를 무시한 채 병상과 건물을 늘리며 예산 쓰기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런 식의 포퓰리즘은 국가 재정을 무너뜨린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예산과 제도를 던져 넣는 방식은 시스템 붕괴를 촉진할 뿐이다. 지역의사제가 그 상징적 사례다. 문제의 본질은 전공 붕괴와 환자 쏠림이다. 해법은 '지역 의사 양산'과 '공공병원 신축'이라니.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도 결과는 똑같다. 지금 필요한 건 '옳아 보이는 정책'이 아니라 실효성있는 정책이다. 지역 의료 붕괴 해소는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적 명분에 갇힌 접근방식으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강승규 사회2팀장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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