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인협회가 추천하는 이달의 지역작가 도서 4권] 세종의 처방전 외

  • 김형범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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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05 06:00  |  발행일 2025-12-04
세종의 처방전/문무학 지음/책만드는집/110쪽/1만2천원

세종의 처방전/문무학 지음/책만드는집/110쪽/1만2천원

세종의 처방전/문무학 지음/책만드는집/110쪽/1만2천원


시조시인 문무학의 열한 번째 시조집 '세종의 처방전'이 서울문화재단 지원으로, 책만드는집 시인선 268로 나왔다. 2009년 '낱말' 시집을 시작으로 한글을 소재로 한 시조집 '홑' '가나다라마바사' '뜻밖의 낱말'에 이어 출간됐다.


시인은 '훈민정음 서문풍으로' 쓴 시인의 말에서 "나랏말씀에 이 나라 저 나라 말이 섞이고, 지나치게 줄여 쓰며, 듣기 거북하게 거칠어져서 서로 잘 통하지 않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 예순여덟 소리를 글감으로 하여 시조를 지었다. 이를 통해 바르고 고운 한글 쓰기를 자랑스럽게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책 끝에 '처방 외전 12첩'을 붙였는데, "시인은 말의 하늘 아래서 아프게 즐기고, 즐겁게 아파한다.


내 말살이를 돌아보는 '세종의 처방전'은 굳이 다른 사람에게 내리는 처방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내린 처방이며, 시조의 배경이 된 이론과 시인의 이력을 실었다. 문학평론가 박진임은 "시인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s)가 언급한 적 있듯이 우리가 매일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언어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시인의 임무 중에는 그 훼손된 말들의 결을 어루만지고 가다듬어서 원래의 고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문무학 시인은 누구보다도 앞서서 그 일을 시작하고 있다"고 했으며, 문무학 시인의 이런 활동에 대해 "대들보는 튼튼히 지키면서 회벽은 새롭게 발라가는 믿음직한 목수가 한국 현대시조시단을 지키고 있다" 고 평했다. 이승하 시인은 "우리 문자 한글의 자모를 소재로 하여 시조를 써 우리를 꾸짖고 있다"고 했으며, 이정환 시조시인은 '세종의 처방전'은 참으로 치열한 탐구 끝에 펴낸 한글 사랑의 결정판이다"라고 밝혔다.


마음의 길/이태수 지음/문학세계사/144쪽/1만2천원

마음의 길/이태수 지음/문학세계사/144쪽/1만2천원

마음의 길/이태수 지음/문학세계사/144쪽/1만2천원


비움과 초월의 시학, 반세기 문학 여정의 결실이다. 등단 50년을 넘어선 이태수 시인이 스물세 번째 시집 마음의 길(문학세계사)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평생 탐구해온 '비움과 초월' '자아의 본질'을 집약한 작품집으로, 삶의 풍진 속에서도 본질을 찾고자 하는 시적 사유가 깊이 배어 있다. 독자에게 "내 마음의 길은 어디인가"를 묻는 조용한 울림을 전한다.


올해 초 낸 은파에 이어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는 이 풍진 세상에서, 내가 나를 찾아, 목어(木魚) 울음, 강가의 저물녘, 달항아리, 겨울 입새에서, 한밤의 눈, 먼 여정(旅程) 등 78편이 실렸다. 시인은 현실의 자아를 비우고 내려놓음으로써 본래의 자아와 마주하는 길을 제시하며, "잃어버린 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 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음을 일깨운다. 대표작 '달항아리'는 '어두운 마음에 순백 달항아리 하나 데려와 앉혔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구절로, 비움으로 충만을 얻고자 하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을 드러낸다. 내부가 비어 있기에 무한을 담을 수 있는 달항아리처럼 그의 시 세계는 고요 속의 충만을 지향한다. '솔숲길을 걸으며'와 겨울 입새에서는 일상의 풍경에서 자연의 순리를 깨닫고, 그래도 지금 여기가 "이만하면 다행"이라며 삶을 긍정한다.


197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그는 '먼 여로' '유리벽 안팎' '나를 찾아가다' '거울이 나를 본다' 등 다수의 시집과 '예지와 관용' '현실과 초월' 등 시론집을 펴냈다. 한국시인협회상, 상화시인상, 천상병시문학상, 대구시문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매일신문 논설주간과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마음의 길'은 반세기 문학 여정의 결실이자 내면의 고요와 초월을 향한 시적 순례의 완성이라 할 만하다.


용마루/권순이 지음/북랜드/289쪽/1만3천원

용마루/권순이 지음/북랜드/289쪽/1만3천원

용마루/권순이 지음/북랜드/289쪽/1만3천원


저자는 일곱 살 때 고향 상주를 떠났다. 나의 안태 고향일 뿐 어른들은 안동이 고향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슬하에 다섯 형제를 두셨다. 일제강점기 말, 그들의 폭정을 견디다 못해 전국 십승지 중의 한 곳인 상주 우복동을 찾아 이사를 하셨다. 아들들의 목숨을 건사하는 일이 선영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이었다. 상주 은척에는 '동학교당'이 있다. 동학은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었다.


시국은 소용돌이쳤다. 해방이 됐다.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전쟁이 터졌다. 아버지는 5형제 중 셋째였다. 선영 자리만 남기고 헐값에 버리다시피 팔아온 그 돈은 가난한 집의 쌀독처럼 헤프게 바닥이 긁혔다. 부친은 날품이라도 팔기 위해 집을 비우셨다. 그 와중에 끝으로 두 삼촌은 한국전쟁에 징집됐다. 할아버지의 선택은 옳았다. 하지만 이별이 어디 죽음뿐이랴. 중백부님이 행방불명된 채 생전에는 물론 지금까지 생사가 묘연하다. 아마도 시국에 휘말려 젊은 날에 저승의 객이 되시지나 않으셨는지. 아픈 손가락으로 남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서도 내색 한 번 할 수 없었다. 그 시간 속에 조부님의 몸은 건어물 가게의 북어처럼 물기 없이 사위어만 갔다. 그 흐름에 거역 한 번 못 하시고 억새꽃 되어 가을 하늘에 흩어지셨다.


가족 묘역을 새로 조성했다. 타향에서 백골이 되어서야 고향 땅에 묻히신 조부님 내외분과 혼이 떠난 육신으로 조상 발치로 돌아오신 어른들의 봉분을 헐었다. 후손이 선산(先山)에 모였다. 새로 조성한 묘역이 깔끔하다. 조상을 한곳에 모시고 그 얼을 새기며 애도가 아니라 축제의 장을 열었다. 흙으로 돌아가신 그 세월이 어언 70여 년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그늘 아래서 자손들이 음덕을 기리며 미래를 논하고 쉼을 갖는다. 이 글의 바탕은 할아버지다.


2월, 꽃반지 자리/김근혜 지음/지식과 감성/120쪽/1만2천원

2월, 꽃반지 자리/김근혜 지음/지식과 감성/120쪽/1만2천원

2월, 꽃반지 자리/김근혜 지음/지식과 감성/120쪽/1만2천원


"디카 시집은 사진 너머의 풍경과 사진 이전의 그림이 더해진 느낌이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단방에 전해와서 좋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 애도와 경의를 보내며 덕분에 정신 차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림 같은 사진이 자꾸 말을 걸어온다."(수필가 노정숙)


시인은 "빗소리와 첼로 연주를 섞어 소박한 시를 빚고 싶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성은 애석하게도 건조했다. 글자는 자신의 고집대로 나를 이끌고, 물감을 풀었다. 바람에 휘어지고, 바스러지려는 가슴을 부여잡고, 건조체 문장을 우유체로 만들기 위해 감성을 조율해야만 했다."


이 시집은 삶의 아픔을 근사하게 치장하지 않고 맑은 얼굴로 표현했다. 감성과 사유를 적절히 섞어 마름질 한 시다. 김근혜 시인은 수필가이자 사진작가이다. 수필집으로 '푸른 얼룩'이 있으며 작가의 수상 경력은 알려진 바다. 이번 시집은 첫 시집이며 모아둔 사진에 옷을 입혔다. 작가의 성격대로 디카시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와 분방함이 느껴진다.공황장애' 중에서 시인은 기댈 수 있는 대상을 '알프람'뿐이라고 말하며 그래도 "죽지 않는다"라는 의사의 말이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고 한다. 비틀거리는 자아와 그림자마저 결국에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다독이고 어루만지며 절망을 회복으로 승화하고 있다.


'마음의 크기'에서는 '자신의 마음이 작아서 당신의 마음 크기를 담지 못했다.' '외면'에서는 라오스 여행 중 만나게 되는 걸인을 보고 손길을 보태지 못한 후회감을 '온몸을 찌르는 가시'로 표현했다.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보이는 순간이다. '2월 꽃반지 자리'는 50편으로 구성돼 있으며 삶의 서늘한 구석을 연분홍 감성으로 어루만지는 섬세한 시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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