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대구 동네서점 생존 보고서…‘5년의 벽’ 넘어설 수 있을까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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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1-04 15:55  |  발행일 2026-01-04
대구 중구에 위치한 한 독립서점에서 한 손님이 책을 구매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영남일보 DB>

대구 중구에 위치한 한 독립서점에서 한 손님이 책을 구매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영남일보 DB>

서점이 사라지고 있다. 교보문고 대구점은 효율성 확대를 이유로 지난해 10월 3층 영업을 종료했다. 국내 대표 출판사 창비가 운영하는 책방 '창비 부산'도 최근 문을 닫으며 서점가에 충격을 줬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마저 매장 규모를 줄이는 상황에 지역 동네서점들의 사정은 더욱 녹록지 않다. 이미 서점가에선 "동네서점은 5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이 나온다. 동네서점은 독서문화를 확산하고 지역 문화 공동체를 형성한다. '동네의 문화 거점' 역할을 하는 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지역의 문화 자산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영남일보는 지역 문화 자산으로서의 동네서점의 가치를 되짚고, 지속 가능한 생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대구 동네서점의 현주소를 세 편에 걸쳐 보도한다.


한강 노벨상 수상에도 발길 뜸해…터줏대감 서점도 폐점

대구 독립서점 더폴락 내부. 다양한 주제의 독립출판물이 비치돼 있다. 조현희기자

대구 독립서점 '더폴락' 내부. 다양한 주제의 독립출판물이 비치돼 있다. 조현희기자

펜데믹 시기 독서인구 증가로 늘어난 동네서점이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 지난달 대구시에 따르면 시에 인증된 지역서점(대구 내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을 제외한 서점)은 지난 2019년 141개소였다. 2023년에 197개소로 급증했다가 지난해 182개소로 감소했다. 서점은 사회 분위기와 소비 심리에 민감한 업종이다.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독서 열기가 살아났지만, 비상계엄 사태와 조기 대선 정국이 겹치며 그 흐름은 오래가지 못했고 지역 동네서점을 찾는 소비자도 빠르게 줄었다.


폐점 원인은 대부분 사업성 부족이다. 종이책 수요가 낮아진 상황에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의 가세와 온라인 서점의 성장이 겹쳐지며 동네의 터줏대감인 서점들조차 문을 닫고 있다. 2024년엔 29년이나 운영된 대전의 계룡문고가, 지난해엔 서울 연신내문고가 25년 만에 폐점했다. 대구도 비슷한 상황이다. 더 문제인 건 현재 버티고 있는 동네서점들 역시 위기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중구 향촌동 골목에 위치한 '더폴락'은 2012년 문을 연 대구 최초 독립서점이다. 다양한 장르의 독립출판물을 비치해두고, 출판도 병행하고 있다. 개점 초기에는 대구에서 유일한 독립서점에다 전국적으로 독립출판 열풍이 불 때라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방문객의 발걸음이 정체됐다. 최성 더폴락 대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후에도 일부 독자들이 해당 작품이나 소설을 찾으러 오긴 했지만, 손님이 가시적으로 늘진 않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 "동네서점은 5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개점 3~5년차에 접어든 서점들은 불안감이 더욱 크다. 2021년 동구 불로동에 문을 연 '여행자의 책'의 박주연 공동대표는 "꾸준히 문을 열고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니 동네에 스며들곤 있지만 손님이 안정적으로 많이 찾아오지는 않는다"며 "대구공항 근처에 자리해 외지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동네책방 마니아가 다수"라고 밝혔다.


예산 늘어도 현장 체감도는 '글쎄'…대구시 지원은 전무

2023년 대구 수성구 황금동 진책방에서 영어원서 읽기 모임이 진행되는 모습. <영남일보 DB>

2023년 대구 수성구 황금동 '진책방'에서 영어원서 읽기 모임이 진행되는 모습. <영남일보 DB>

설상가상으로 지역서점 관련 정책에 혼선이 생기며 위기는 더욱 커졌다. 2024년 문체부는 지역서점 활성화 및 지원 예산 11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후 관련 업계를 중심으로 논란이 일자 문체부는 이를 '디지털 도서 물류 지원' 예산으로 변경하고, 예산도 15억원대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지원비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지역서점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권역별 선도서점 육성(11억원, 신규), 디지털 도서 물류 지원(14억원, 2억원 증액) 등 관련 예산이 복원됐지만 현장 체감도는 미미하다. 그동안 북토크나 작가와의 만남으로 이어지던 지원은 축소됐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로 책 가격을 자유롭게 낮출 수 없는 구조에서, 온라인 서점의 도서 10% 할인과 대형 서점의 각종 쿠폰 제공은 동네서점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동네서점들은 큰 서점에서 보기 힘든 북토크(작가와의 만남), 독서모임 등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관심을 유도한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뒷받침하던 지원이 줄며 동네서점의 핵심 경쟁 요소마저 흔들린다는 지적이다.


박주연 여행자의책 공동대표는 "동네서점이 인터넷 서점과 다른 점은 사람을 직접 만난다는 점이고, 누군가가 책이 있는 공간에서 머무를 수 있기 때문에 작가와의 만남이나 독서모임을 꾸준히 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 동네에 작가가 찾아오고, 동네에서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주민들의 문화적인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라며 "이런 행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서점이 유지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자체 차원의 지원도 부족하다. 대구시는 2021과 2022년 동네서점 및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해 지역인증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면 도서 구입비 50%(지역출판사 도서는 80%)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복수의 지역서점 대표들은 "당시 손님 유입 효과가 분명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해당 사업은 이후 지속되지 않았고, 유사한 지원도 전무한 상황이다.


수성구 황금동에 2020년 문을 연 진책방의 김진행 대표는 "(지역인증 서점 도서 구입비 지원 제도가 진행될 때가) 서점을 운영하며 손님이 가장 많이 왔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평소 가격 부담으로 망설이던 대하소설을 구매하는 독자도 많았고, '대구에 살아서 행복하다'는 반응도 있었다"며 "경기가 안 좋을 때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게 책과 관련된 부분인데 그 사업까지 잘랐어야 했나 아쉬움이 남는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지역서점과 지역출판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했지만 지역서점 매출 증대가 미미하고 지역출판사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지역출판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출판사에 직접 마케팅 홍보·제작 등을 지원하는 것으로 방향을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올해 △지역 서점·출판사·작가 등이 참여하는 제3회 인디도서전 △우수 출판 콘텐츠 제작 지원 결과물과 지역서점을 연계한 북토크(신규 사업) 진행 △지역인증 서점에서 공공도서관 도서 우선 구매 등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공간 특성 고려한 지원 필요…도서정가제 유지도 중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동네서점이 없어지는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며 출판·문학 분야에 대한 지원 강화를 주문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동네서점이 없어지는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며 출판·문학 분야에 대한 지원 강화를 주문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이재명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동네서점이 없어지는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며 출판·문학 분야에 대한 지원 강화를 주문했다. 서점 단체들은 "동네서점의 급감 문제를 국가 과제로 분명히 지적하며 출판을 포함한 문학 분야 지원 방안 마련을 지시한 데에 대해 적극 환영하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동네서점이 살아남기 위해선 더 주의깊은 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일부 정책 방향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례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2024년 진행한 키오스크 보급 지원 사업에 대해 대구의 한 서점 운영자는 "동네서점의 매력은 사람을 대면하는 공간이라는 점인데, 키오스크처럼 비대면을 전제로 한 지원을 보고 의아했다"고 꼬집었다.


도서정가제 유지 역시 지역 동네서점의 생존과 직결된 제도로 꼽힌다. 다수의 서점업계 종사자들은 "도서정가제는 지역서점과 독서문화의 마지막 울타리"라고 강조했다.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면 대형 플랫폼의 과도한 할인과 덤핑이 일상화돼 동네서점은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11일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한국서점인협의회 등 11개 서점·출판 단체들도 성명을 내고 "도서정가제가 유지돼야 판매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책이 독자와 만날 가능성이 남는다"고 했다.


시민들도 동네서점이 사라지는 환경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구 중구 김은지(27)씨는 "온라인 서점이 편하긴 하지만, 동네서점에 가면 몰랐던 좋은 책을 발견하고 동네서점만이 주는 연결성을 느낄 수 있다. 큐레이션한 책도 서점마다 달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며 "이런 공간이 사라지는 건 대구에서 놀 수 있는 곳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래 버틸 수 있도록 행정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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