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네서점 생존 보고서-2] “책이 있는 심리치료센터 같아요”…주민들이 말하는 동네서점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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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11 14:27  |  수정 2026-02-14 13:05  |  발행일 2026-02-11
지난달 28일 대구 수성구 황금동에 위치한 진책방에서 독서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대구 수성구 황금동에 위치한 '진책방'에서 독서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대구 수성구 황금동 골목길에 위치한 진책방. 문을 열자 웃음 섞인 각기 다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올해 6년차를 맞은 이 동네서점은 모임을 위한 공간이라 할 정도로 독서모임이 일주일 내내 꽉 차 있다. 기자가 찾았을 때도 네 명의 손님이 '자유론'이란 책을 들고 둘러앉아 있었다. 이날 참여자들은 3년 이상 모임에 참여해온 서점 단골들이었다. 이들은 "동네서점이 사라진다면 어떨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상실감'이란 단어를 꺼냈다. "상실감이 정말 클 것 같아요. 사라지지 않게 지켜낼 거지만, 만약 사라진다면 우리끼리라도 무언가를 만들 것 같아요."


터치 몇 번이면 주문한 책이 집에 오고, 원하는 책을 언제든 빌려 볼 수 있다. 이런 세상에도 불편함을 감수하며 작은 서점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다. 동네서점 이용자들은 동네서점을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상점을 넘어, 책을 매개로 타인과 소통하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심리치료센터'에 비유했다.


진책방 서점 내부. 서점 주인과 이용자들의 취향이 담긴 책들이 진열돼 있다.

진책방 서점 내부. 서점 주인과 이용자들의 취향이 담긴 책들이 진열돼 있다.

◆이웃과 만나는 '환대의 장소'…이용자들 모여 책 캠페인도


동네서점은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이웃을 만날 수 있는 '제3의 장소'다. '제3의 장소'란 비교적 낮은 문턱으로 연령이나 직업 등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어울리고 마주할 수 있는 환대의 장소를 뜻한다. 대형 서점, 인터넷 서점과 달리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적 특성으로 동네서점에선 독서모임,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열리고, 서점 이용자들은 책을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게 된다. 독서모임의 경우 같은 책을 읽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며 연결된다.


진책방 독서모임에 4년째 참여 중인 이소영(49)씨는 "책 좋아하는 사람을 밖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데, 동네서점은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어울려 놀 수 있다"며 "책을 통해 타인과 대화하고 '힐링'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제 삶에 영양제 같은 공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현대사회에서 보기 힘든 이웃과의 교감이 이뤄지다보니 모임 참여자들 사이에선 지속적인 관계망이 형성된다. 이용자들은 이런 관계를 바탕으로 서점에서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한다. 진책방의 독서모임 참여자들은 책값을 대신 내고, 책방을 찾은 청소년이 스스로 책을 골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책 사줄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이 부모의 개입 없이 책을 직접 고르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캠페인에 참여한 윤은주(45)씨는 "큰 시스템 안에선 개인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렵지만, 동네서점에선 이용자들의 의견이 바로 반영되고 하고 싶은 일을 직접 만들어갈 수 있어 효능감을 느낀다"고 했다.


대구 남구 앞산 인근에 위치한 '하나의 시선 골목책방'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2023년 문을 연 이 서점은 문학 서적만을 취급하는 책방이다. 진책방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독서모임을 진행한다. 서로 신상정보를 알게 될 경우 발언권이 쏠릴 수 있기에 모임에선 닉네임을 사용하고 서로 나이나 직업을 밝히지 않는다. 각자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 이유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지난달 28일 서점에서 만난 한 참가자는 "내가 그은 문장과 다른 사람이 그은 문장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고, 표시한 문장이 겹칠 경우 비슷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대구 남구에 위치한 하나의 시선 골목책방에서 독서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대구 남구에 위치한 '하나의 시선 골목책방'에서 독서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서점 주인과 상호 소통 가능…새로운 취향 발견하는 재미도


이용자들은 왜 거대 자본의 대형 서점이나 무료로 이용 가능한 도서관 대신 동네서점을 고집할까. 이들은 서점과 '상호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하나의 시선 독서모임에 참가한 A씨는 "대형 서점은 공간이 너무 크고 직원과 대화할 일이 거의 없다. 반면 동네서점에선 사장님에게 책 추천을 받을 수 있고, 책 취향에 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했다. 이어 "온라인이나 SNS에서도 책 추천을 받을 수 있지만, 그건 일방적인 전달"이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책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대형 서점은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이 진열되고, 도서관은 소장 자료가 방대해 오히려 책을 고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와 달리 동네서점에선 서점 주인의 취향과 사회적 관심사가 반영된 큐레이션을 통해 자신도 몰랐던 독서 취향을 알아갈 수 있다.


또 다른 독서모임 참가자 B씨는 "알고리즘으로 내가 관심 갖는 주제만 계속 보는 것처럼, 도서관이나 큰 서점을 찾으면 원래 좋아하는 장르만 찾는다"면서 "동네서점에서는 사장님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책을 권해주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독서의 폭이 넓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대구 남구에 위치한 동네서점 하나의 시선 골목책방에서 진행한 지난달 독서모임·북토크.

대구 남구에 위치한 동네서점 '하나의 시선 골목책방'에서 진행한 지난달 독서모임·북토크.

유명 작가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하나의 시선 골목책방도 매달 작가를 만날 수 있는 북토크 행사를 개최한다. 조하나 하나의 시선 골목책방 대표는 "서울에는 북토크를 하는 책방이 많지만, 지방에는 작가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없다"며 "북토크를 열면 수익 면에서는 사실상 손해지만, 대구에서 작가와 독자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 매달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손님이 유입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지역의 매력을 알리는 데도 한몫해 책방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동네서점이 하나의 여행 코스로 자리잡았다. 지역과 관련된 출판물이나 지역 출신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여행하는 지역을 더욱 잘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공항 인근에 있는 '여행자의 책'은 외지인은 물론 외국인 여행객들도 방문하는 서점인데, 현진건, 박남옥, 김광석, 봉준호 등 대구 출신 인물들을 소개하는 책 코너가 있다.


진책방의 한 이용자는 말했다. "동네서점은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작은 문화 커뮤니티예요. 고령화 시대에 나이를 먹을수록 동네 곳곳에 문화 공간이 있으면 삶의 질이 달라질 거예요. 동네서점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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