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덕포구에서 건너는 별헤는 다리와 배알도 해맞이 다리의 아름다운 풍경.
겨울 철새가 부리에 겨울을 물고 왔다.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기수역, 한 무리 철새의 보금자리가 된다. 게으른 햇빛이 누워 뒤척이는 겨울 바다가 어쩐지 청동거울을 닮았다. 수면은 잔잔하고 풍경은 물그림자로 잠겨 시선을 빼앗는다. 여긴 따스하게 빛나는 햇살이 우두머리인 광양, 배알도 수변공원이다. 바닷가는 최근 주목받는 어싱(earthing) 명소 모래사장이 낭만의 해안 탐방로로 변모했다. 거기에 아직도 무수한 발자국이 남아 있다. 어떤 발자국은 바다로 갔다. 저렇게 엉켜 있는 발자국의 임자는 어디로 떠나버렸지만, 나는 그곳으로 간다.
해변길을 사박사박 걷는다. 주변 풍경이 매우 아름답고 마치 예술 창고처럼 다채롭다. 섬진강 하구 그 물길이 굽이친다. 먼 옛적부터 온갖 이야기를 주절대며 유장히 흐르는 섬진강. 전북 임실에서 발원하여 전남 경남 하동을 지나 남해로 흘러드는 강. 이 강의 옛 이름은 고운 모래에서 따온 두치강, 모래 가람, 다사강, 모래내, 대사강, 사천 등으로 불렸으나 고려 우왕 11년(1385년)경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가 수로를 막고 울부짖어 왜구가 상류로 가지 못하고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고 하는 설화가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 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했다고 한다.
알섬 배알도 조형물. 그 앞에 광양9경 광양9미가 석재에 칼라로 소개돼 있다.
섬진강을 따라가는 길은 지리산과 호남정맥을 좌우에 두고 흘러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다. 게다가 하굿둑이 없다. 여기는 기수역 어종, 회유어종이 몰려들어 어(漁) 자원이 풍부하다. 흰 모래 맑은 강물 탓인지 섬진강 물고기 종류도 많고 형형색색 물고 뽑은 예술품 같다. 버들치, 쉬리, 미유기, 피라미, 모래무지, 잉어, 쏘가리, 버들붕어, 꺽지, 가물치, 연어, 황어, 뱀장어가 섬진강을 헤엄친다. 또 두꺼비, 수달, 큰고니, 독수리 등도 살고 있다. 나는 몇 해 전 가을 토지의 배경 최참판댁에 가다가 강가 물억새 군락 사이로 본 빈 배의 아름다움에 감동해 자작시를 지었다. 여기 옮겨본다. '섬진강 어부. 섬진강 환쟁이 송만규, 강진 막걸리 마시며 그린 물우리 소나무 숲, 손에 갈근거리는 연필선 따라 섬진강 흐르고, 두꺼비 상형문자로 기어가는 억새밭에 빈 배로 남아, 깊은 잠에 빠져 꿈꾸는 어부. 모래톱에 나부끼는 물 억새밭 어딘가 노란 부리 새끼 키우며 소리 없이 영그는 멧새의 사랑. 미풍에 살랑거리는 물 버들잎 사이로 피라미 떼 날아다니고, 뱃노래 사라진 갯가에 빈 배로 인화(印畫)된 섬진강 어부.'
섬진강이 550리를 흘러와 남해와 만나는 기수역인 망덕포구 앞바다.
돌아 나와 해맞이 다리를 건넌다. 배알도와 연결된 해상보도교다. 배알도에 발을 딛는다. 배알도는 0.8㏊의 작은 섬이다. 축구장보다 좀 더 큰 아담한 알섬으로 대동여지도 등에 사도(蛇島)로 표기되어 뱀섬으로 불려오다가, 망덕리 외망마을 산정에 있다는 천자를 배알하는 형국에서 배알도란 이름을 얻은 신비의 섬이다. 배알도는 550리를 흘러온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마침표를 찍듯이 동그마니 떠 있다. 방금 건너온 '해맞이 다리'와 망덕포구로 가는 '별 헤는 다리'를 잇는 바다 위 낭만 플랫폼이다. 사계절 아름다운 꽃이 피고 섬진강 하구와 에메랄드빛 바다 하동 광양을 조망할 수 있는 둘레길을 갖춘 섬 정원으로 꾸며 관광의 별이 되어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나무 계단을 올라 섬 정상에 있는 정자 해운정에 들린다. 운치 있는 소나무 사이로 사방을 볼 수 있는 걸림 없는 전망대이다. 바다와 섬진강 하구, 그 너머 하동 고포리 수변공원과 그 뒤 금오산이 보인다. 반대쪽에 광양 망덕포구와 호남정맥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망덕산 그 파노라마 따라가면 광양산업단지와 태인대교 조금 전에 건넌 수변공원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그 풍광은 별천지고 감동이다.
망덕포구에서 본 별헤는 다리와 배알도, 남해 바다. 그 뒤 연기 오르는 곳은 하동 화력발전소이다.
망덕포구로 가기 위해 별 헤는 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는 길이 275m, 폭 3m 규모의 현수교식 다리로 곡선 램프를 도입한 국내 최초 해상보도교이자 선박이 드나드는데 제한이 없도록 다리 아래 공간을 여유 있게 확보했다. '별 헤는 다리'는 윤동주의 시(詩)에서 따왔지만 어쭙잖게 전어를 형상화한 다리이다. 가을 별미인 전어와 봄바람 불면 물속에 핀 벚꽃처럼 생겨 얻은 이름인 벚굴 요리로 망덕포구는 맛 기행 일순위 여행지이기도 하다. 전어는 돈을 생각하지 않고 사먹을 만큼 맛있다는 뜻에서 돈 전(錢)자 전어(錢漁). 머리부터 버리지 않고 모두 다 먹을 수 있어 온 전(全)자 전어(全漁) 등 다양한 뜻이 있다. '가을 전어는 깨가 서 말이다(가슬 역삽은 꾀가 시 말이다·호남 탯말)'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가을 전어 한 마리면 햅쌀밥 열 그릇 죽인다' 등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속담의 주방에서 썰어내는 차지고 고소한 전어회를 씹으면 한입 가득 바다 향기가 퍼진다. 가을에 다녀온 전어 축제 이야기다.
국가등록문화재 정병욱 가옥의 후면 옹벽에 있는 윤동주 서시의 앞부분.
다리가 끝나자 망덕포구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포구길은 낭만과 온기가 있었다. 망덕포구 유래는 광양만을 한눈에 파수(경계하여 지키는 일)할 수 있는 지역이라 '망뎅이'라고 이름했고 이를 한자음으로 망덕이라 했다. 한눈 감고도 다 볼 수 있는, 한눈에 홀딱 반해버리는 풍경이다. 발길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유고를 보존한 정병욱 가옥(국가등록 문화유산)으로 향했다. 나무 문과 하얀 벽 붉은 지붕은 일반 가옥과 다르게 단정했다. 가옥 후면 옹벽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서시가 쓰여 있다. 1925년에 지어진 양조장과 주택을 겸한 이 가옥 마루 밑 항아리에 윤동주의 육필 원고 시집이 일제 강점기 동안 숨겨져 있었다.
시인 윤동주의 자필 시집을 마루 밑 항아리에 숨겨뒀던 국가등록문화재 정병욱 가옥. 문학의 성지가 됐다.
그 연유는 이러하다. 가옥 주인인 정병주는 1940년 4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윤동주와 하숙을 함께한 가까운 글벗이었다. 그러다 연희전문을 졸업할 즈음 윤동주는 손수 만든 자필 시집을 정병욱에게 건넸다. 그 후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투옥, 1945년 2월16일 향년 29세 나이에, 광복 6개월을 앞두고 애석하게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절했다. 정병욱도 1944년 1월 태평양전쟁에 징용으로 끌려갔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전쟁판에 가면서도 그는 어머니에게 윤동주의 자작 시집을 잘 보존하시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정병욱은 다행히 살아서 돌아왔다. 광복 후인 1948년 정병욱은 연희 전문 동기인 강처중과 함께 윤동주의 유고 시 31편을 엮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했다. 자칫 영영 묻힐 뻔했던 윤동주의 어린이 눈망울 같은 시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가옥 마루 밑 항아리에서 숨죽이고 있었을 그 간절한 시어들이 우리의 영혼에 스며드는 창가의 세레나데가 됐다. 이제 정병욱 가옥은 한국 문학사의 상징적인 장소로 남았다.
이 가옥에서 조금 떨어진 '윤동주의 시 정원'에는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바람이 불어' 등 31편의 유고시가 모두 시비에 새겨져 있다. 특히 '바람이 불어'는 2023년 11월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버킹엄궁 국빈 만찬장에서 영작된 시를 직접 낭송했다. 윤동주의 시가 문화와 국경을 넘어 세계로 번져간 감동의 사례였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로 시작하는 이 시는 그의 시 중에서도 가장 아프고 울렁이는 내면을 고백한 작품이다. 어느덧 해가 서서히 기울고 망덕포구 앞바다는 붉은 잔광으로 물들어 그지없이 아름답다. 그때 물수제비를 뜨며 날아오르는 철새의 비행에 감탄한다. 하루 여행이 황혼이 짙어지는 길 모금에서 시나브로 땅거미가 된다.
글=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장병선 여행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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