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무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입 상임대표·대구 화동초등 교사
수업을 마치고 가면서 혜진이가 봉투를 주고 갔다. 하얀 종이를 오려서 셀로판테이프로 마감한 봉투 앞면에는 고양이가 잠자는 스티커를 붙이고, 뒤에는 웃는 얼굴 이모티콘을 그렸다. 봉투 속에는 공책을 오려서 또박또박 반듯한 글씨로 쓴 편지가 들어 있다. "TO. 임성무 선생님(작가님)"으로 시작했다. 3학년 아이들에게 요즘 TO가 유행인가 보다. 나보고 사인해 달라고 하면서 앞에 TO를 꼭 써 달라고 하는 아이들이 여럿이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무섭다고 생각해서 음악 시간이 조금 무서웠는데, 이제는 선생님이 재미있고 유쾌하셔서 수업하기가 기다려져요." 교사에게 이만한 칭찬이 없다. 마지막엔 "선생님이 작가로 활동하시면서 책 내시면 꼭 볼게요. 임성무 선생님의 작가 생활을 응원할게요."로 응원해 주면서 편지를 마무리했다.
음악 시간에 마지막 노래가 '헤어질 때 부르는 노래'이다. "지금 우리 친구를 떠나보내려 하네 우리의 마음은 너무 섭섭하지만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가 있는 것 우리의 마음에 너를 담아둘 거야" 이 노래 가사 친구들을 선생님으로 바꾸어 담임 선생님에게 노래 선물을 하기로 하고 연습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가면서 하린이가 와서 살포시 안아주고 갔다.
3학년 마지막 음악 수업을 했다. 마지막 노래를 무엇으로 할까? 며칠 고민했다. 한돌 작곡 '꼴찌를 위하여'를 가르쳤다. 목감기가 걸려 노래를 부르기 힘들어서 앰프를 사용해서 오랜만에 기타를 치고 불렀다. 아이들은 이 노래를 아주 좋아했다. 마지막엔 얼굴 공개도 좋다는 친구들과 노래 영상을 만들어 '임성무TV'에 올렸다. 유튜브를 만들어 두니 녹화한 영상을 바로 올려 같이 볼 수 있어서 참 좋은 걸 이번 주에서야 유튜브를 만들고 알았다. 은설이가 공책을 찢어서 자기 말로 허접하지만 접은 편지를 주고 갔다. 편지 겉에 허접주의라고 써있다. "음악이 너무 재밌고 선생님이랑 함께한 시간이 너무 빨리 가네요. 무서워서 피한 적도 많은데, 그래도 선생님 때문에 리코더, 노래 등등 많은 것들을 잘하게 됐어요. 정말 감사해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교사는 이런 살짝 주고 간 편지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이 '꼴찌를 위하여' 악보를 들고 와서 사인해 달라고 했다. 무슨 말을 쓸까 하다가 '어린이는 희망입니다. 좋은숲 임성무'라고 써주었다.
5학년 과학 수업을 마무리했다. 산성 용액과 염기성 용액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로 실험했다. 교과서에선 맛을 보게 하진 않지만, 살짝 맛보게 했다.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맛을 보고 짠맛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세상 어디에서든 서로 다른 물질이 만나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고 있고, 생활 속에서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그리고 '과학 아는 민주시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민이고, 주인이고 시민인데, 여기에다 과학 쫌 아는 민주시민이면 나는 어떻게 사는 사람일까?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하기로 하고 마쳤다.
지난 화요일엔 교육청 강당에서 열린 학생과 교직원 저자 출판기념회에 참가했다. 나는 그동안 어린이 문집을 다섯 권 엮어서 반 아이들이 작가가 되도록 도왔다. 월요일 고3이 된 '우리 진짜 시인이 되겠다'의 작가 제자들 셋이 교실을 찾아와서 오래 웃다가 갔다. 우리는 참 많은 체험을 했고 글로 써서 책을 만들었던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올해는 담임이 아니어서 내가 쓴 글로 책 '가르치며 배웁니다'를 출판했다. 팔기도 해야 하지만, 정년퇴직 선물로 나누어 주려고 천 권이나 찍었다. 혹시 사인을 부탁하면 어떤 말을 쓸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오후에 3~4학년 아이들 몇이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와서 놀다 갔다. 퇴직을 하면서 짐을 정리하다가 내놓은 책, 액자, 놀잇감을 나누어 주었다. 나는 학생 16년, 교사 40년, 모두 56년 동안 학교에 다녔다. 이 칼럼이 나오는 날 나는 마지막 수업을 해야 한다. 아직도 마지막 수업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혹시라도 울지는 않을까 참는 연습을 하고 있다. 1991년 전교조 해직교사로 나는 마지막 수업을 해봤지만 그땐 반드시 돌아올 줄 믿었다. 이젠 진짜 마지막이다. 하루를 천년같이 보내다가 한 시간을 천년같이 여기고 수업했다. 매일 고마운 분들을 떠올려 전화하고, 마지막 책 광고로 퇴직 인사를 하고 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잘 견디고 여기까지 오도록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고맙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