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내란재판 443일…‘12·3 계엄’ 첫 형사 판단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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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19 17:41  |  발행일 2026-02-19
비상계엄 선포에서 파면·기소까지 숨가쁜 전개
43차례 공판·160여 명 증언, 쟁점 총망라
대통령 비상권한 범위, 법원 첫 결론
1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생중계하는 뉴스 화면. 재판부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건에 대한 판단을 밝히고 있다. 강승규 기자

1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생중계하는 뉴스 화면. 재판부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건에 대한 판단을 밝히고 있다. 강승규 기자

2024년 12월 3일 밤, 뜬끔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대혼란은 2026년 2월 19일 1심 선고에 이르기까지 443일 동안 한국 사회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계엄 발동과 국회의 즉각적 대응, 탄핵과 파면, 대규모 형사 재판과 법정 안팎의 공방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정치와 사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를 혼돈상태로 내몰았다. 헌정 질서의 근간과 대통령 권한의 한계를 둘러싼 논쟁은 선고 직전까지 긴장감을 갖게 했다.


◆계엄 선포와 파면…헌정 위기의 시작


윤석열 전 대통령은 12월 3일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야권의 입법 공세와 국정 혼란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군이 국회 인근에 주둔하면서 정국은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 일부 부대 이동과 통제 조치가 알려지며 정치권은 강력 반발했고, 시민사회도 위헌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국회는 즉각 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대응에 나섰다. 다행히 계엄은 6시간만에 해제됐지만 이후 대통령 비상권한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남겼다. 곧이어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의결했고, 사건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헌재는 2025년 4월 4일 전원일치 의견으로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다. 헌재는 계엄 선포가 헌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민주적 기본질서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은 결국 파면됐다.


◆160회 공판에 160명 증인 …유례없는 마라톤 재판


파면 열흘 뒤인 4월 14일,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첫 형사 법정에 섰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에 배당된 재판은 그야말로 장기전이었다. 윤 전 대통령만 43차례에 재판을 받았다. 군 특수전 부대원과 지휘관, 경찰 고위 간부 등 61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군경 수뇌부의 병합 전 관련 사건까지 합치면 160회 열린 재판에, 160명이 증인으로 나섰다. 마라톤


재판에선 계엄 준비 과정과 군·경 지휘 체계, 국회 기능 제약 시도 여부, 체포조 운영 의혹 등 구체적 실행 행위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계엄이 단순 정치적 선언이었는지, 실질적인 국헌문란 행위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재판 향방을 가른 결정적 장면도 있었다. 2025년 3월 7일 재판부가 구속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며 구속취소 결정을 내리자, 기존 실무 관행과 다른 판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치권 공세와 재판장 관련 의혹 제기가 이어지며 사건은 법정 밖에서도 뜨거운 논쟁을 낳았다.


중반 이후엔 피고인 출석 문제와 방어권 범위가 쟁점으로 부각됐다. 윤 전 대통령은 재구속 후 16차례 연속 공판에 나오지 않았다. 이후 출석을 재개했지만, 막바지엔 공동 피고인 측의 장시간 증거 조사로 결심 일정이 연기되면서 재판 지연 논란이 불거졌다. 방어권 보장과 신속한 재판 원칙 사이에서 재판부의 소송 지휘에 대한 평가도 엇갈렸다.


◆결심과 선고…443일 만의 사법 판단


2026년 2월 13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특검은 계엄 선포를 '내란'으로 규정하며 중형을 구형했다. 군 병력 동원과 국회 기능 제약 시도가 헌정 질서를 침해했다는 것. 반면 윤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계엄은 국가 기능 마비를 막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었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위헌·위법 논란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2월 19일에는 비상계엄 선포 443일 만에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재판부는 계엄 선포의 위법성, 내란 성립 요건 충족 여부, 우두머리 지위 인정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이날 판결은 대통령의 비상권한 행사 범위와 형사 책임의 한계를 가르는 첫 형사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사건은 항소심 절차로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443일간 이어진 헌정 격랑은 일단 1심 판단으로 한 고비를 넘겼다.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초유의 사태는 이제 사법적 기록으로 남았다. 그 법적·정치적 파장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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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사실 위에 진심을 더합니다. 깊이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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