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위기의 포항 (上)] 갈림길 선 포항 철강공단, 멈춰선 공장소리에 지역경제 ‘휘청’

  •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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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24 16:27  |  수정 2026-02-24 16:28  |  발행일 2026-02-24
포항 경제 뿌리째 흔드는 ‘도미노 침체’
철강공단 휴·폐업 1년 새 5배 급증
협력사 줄도산 공포 현실로
오천 등 외곽 상권까지 ‘고사 위기’
“체질 개선 못 하면 장기 침체”
포항철강산업단지 전경. 포항시 제공

포항철강산업단지 전경. 포항시 제공

해병대 장병들과 공단 근로자들로 북적이며 포항 남구의 대표적인 불야성 중 하나로 꼽혔던 오천 서문 사거리 인근의 상권이 경기 침체 직격탄을 맞으며 빈 점포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김기태 기자

해병대 장병들과 공단 근로자들로 북적이며 포항 남구의 대표적인 '불야성' 중 하나로 꼽혔던 오천 서문 사거리 인근의 상권이 경기 침체 직격탄을 맞으며 빈 점포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김기태 기자

포항철강산업단지 가동률 및 휴·폐업 업체 추이.

포항철강산업단지 가동률 및 휴·폐업 업체 추이.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인 포항 철강산업이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고관세와 중국의 저가공세에 치이고, 내부적으로는 극심한 내수부진에 갇히며 존립의 기로에 섰다.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무너지는 유례없는 위기상황 속에 포항 철강공단의 가동률이 곤두박질치며 지역경제 전체에 '적색 경고등'이 켜졌다. 수년전부터 감지된 위기신호는 이제 단순한 지표 하락을 넘어 지역 실물경제의 뿌리를 흔드는 '도미노 침체'로 번지고 있다. 포항은 지금 '철강도시'의 명성을 유지하며 극적인 반등에 성공할지, 아니면 산업 쇠퇴의 길을 걷는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전락할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 가팔라진 폐쇄 속도…멈춰선 공장, 식어가는 '공단의 체온'


포항 산업의 중추인 철강공단에 유례없는 적색 경고등이 켜졌다. 글로벌 수요의 기록적인 둔화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 여기에 중국산 저가물량의 파상공세가 '삼각 파도'로 밀려오면서 공단의 온기가 급격히 식어가고 있다.


실제 통계수치는 충격적이다. 23일 포항철강관리공단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포항철강산업단지 내 입주 공장 354곳 가운데 정상 가동 중인 곳은 328곳이며, 공식적인 휴·폐업 상태인 곳은 10곳으로 집계됐다. 단순히 숫자만 보면 미미해 보일 수 있으나, 전문가들은 '증가 속도'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년 전인 2024년 12월 당시 휴·폐업 공장이 단 2곳에 불과했던 점과 비교하면 불과 1년 사이 폐쇄 속도가 5배나 가팔라졌다. 2022년 5곳, 2023년 4곳이 문을 닫았던 과거의 완만한 흐름과 견주어봐도 최근의 상승세는 분명 비정상적이며 가속도가 붙은 형국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통계 이면에 숨겨진 '그림자 휴업'과 '좀비 기업'의 확산이다. 현재 공단 내에는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마땅한 거래처를 찾지 못해 사실상 기계가 멈춰 선 채 '건설'로 분류된 공장들이 적지 않다. 현장 취재 결과, 이들 유휴 시설까지 실질적인 가동 중단 상태로 간주할 경우 실질 가동률은 공식 발표치를 훨씬 밑도는 70%선에 머물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단의 외형인 입주 업체 수는 2021년 정점을 찍은 뒤 완만한 감소세로 돌아섰다. 가동 비중 역시 2023년까지 일시적 회복세를 보였으나, 최근 들어 긴 정체와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는 일시적인 경기 부진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탄소중립 압박이란 거대한 구조적 부담이 임계점에 도달해 터져 나온 결과로 풀이된다. 공단의 '체열'이 떨어지면서 이를 생명줄로 삼는 전후방 산업 생태계 전체가 동반 저체온증에 빠져들고 있다.


◆ 앵커 기업 감산 직격탄… 협력사 '줄도산' 공포 현실로


지역 경제의 심장인 대표 철강사들의 행보는 이러한 침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포스코는 수익성이 악화된 1제강공장을 전격 폐쇄한 데 이어, 최근에는 1선재공장의 가동마저 중단했다. 현대제철 역시 포항2공장 가동을 멈추고 고강도 감산 체제에 돌입했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수익성 방어를 위한 기업의 고육지책이라지만, 이들 대형 앵커 기업의 가동 중단은 곧바로 물류, 설비 유지보수, 정비업계 등 수천 개의 중소 협력업체에 직격탄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원청 기업의 감산은 협력사의 매출 급감과 설비 투자 위축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며 지역 경제의 모세혈관을 막고 있다.


공단에서 만난 한 중견 가공업체 대표는 "중국산과의 단가 경쟁이 도를 넘어섰고, 전기료 등 에너지 비용까지 치솟으면서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적자 구조가 고착화됐다"며 "지금은 성장이 아니라 오직 부도를 막기 위해 주말 특근을 없애고 잔업을 최소화하는 등 '마른 수건 짜기'식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신규 인력 충원은 이미 엄두도 내지 못하며, 기존 인력의 재배치나 무급 휴직을 검토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숙련공들이 공단을 떠나면서 향후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현장이 정상화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 산업 현장 냉기, 골목 상권까지 '초토화'… 도미노 침체 가속


산업 현장에서 시작된 냉기는 곧바로 지역 소비 시장의 '혈세'를 말리고 있다. 포항의 전통적 경제 중심지인 중앙상가는 이미 상가 10곳 중 7곳이 비어있을 정도로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 한때 포항의 명동이라 불리며 시민과 노동자들로 북적이던 거리는 이제 '임대 문의' 현수막만이 을씨년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기는 외곽 상권으로 무섭게 확산 중이다. 철강 근로자들의 주요 거주지이자 상업 요충지로 '불야성'을 이뤘던 오천읍과 해병대 인근 상권 역시 지난해부터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층 이상 점포의 공실률은 70%에 육박하며 자영업자들의 절규가 깊어지고 있다.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던 식당들은 손님이 끊겨 일찍 문을 닫기 일쑤고, 권리금조차 포기한 채 가게를 내놓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철강업은 포항 제조업 고용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지방세수의 핵심 축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공단 가동률 하락은 단순한 통계 수치의 하락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을 야기하고, 가계 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이미 일부 협력사에서는 희망퇴직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어, 지역 사회 전체가 거대한 경제적 충격파에 휩싸일 조짐이다.


◆ "구조적 결함… 산업 다변화와 기술 혁신만이 유일한 퇴로"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단순한 경기 순환의 저점이 아닌, 산업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기와 맞물린 '구조적 진통'이라고 진단한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친환경 공정 도입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포트폴리오 재편이 늦어지는 사이 지역 경제의 기초 체력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특히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며 수출길이 좁아진 상황에서, 갈 곳 잃은 중국산 저가 물량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자 국산 철강 가격은 하방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영업이익률의 급락으로 이어졌고, 대기업들조차 설비 통폐합과 긴축 경영이라는 극한의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결국 위기 탈출의 열쇠는 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다변화와 미래 핵심 경쟁력 선점에 달려 있다. 고부가가치 철강재 비중 확대와 친환경 전기로 투자, 그리고 위기에 처한 중소 협력사에 대한 특단의 금융 지원 및 기술 전환 가이드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차세대 공정 기술이 지역 내 중소기업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대기업만의 생존에 그칠 뿐 지역 경제 전체의 온기를 되살리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지역의 경제 전문가는 "철강 산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2차전지, 바이오 등 신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역 경제의 중심축은 철강"이라며 "전통 산업의 연착륙과 신산업의 안착을 동시에 이뤄내기 위한 정부 차원의 규제 완화와 강력한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포항이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무너질 것인지, 아니면 혁신을 통해 재도약할 것인지, 지금 포항은 시대의 시험대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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