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병들과 공단 근로자들로 북적이며 포항 남구의 대표적인 '불야성' 중 하나로 꼽혔던 오천 서문사거리 인근의 상권이 경기침체 직격탄을 맞으며 빈 점포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김기태 기자
포항 남구 오천에 있는 1천700여세대의 대규모 아파트 인근에 있는 상가 모습. 주민들에 따르면 이 상가들은 1년째 공실로 비워져 있다. 김기태 기자
경북 포항 경제의 심장부인 철강관리공단에 휘몰아치는 찬바람이 공장 담벼락을 넘어 인근 배후주거지인 오천지역의 실물경제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과거 해병대 장병들과 공단 근로자들로 북적이며 포항의 대표적인 '불야성' 중 하나로 꼽혔던 오천읍 구도심 상권이 최근 철강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현장에서 확인한 오천읍의 분위기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일상이 유지되는 듯 보이지만, 상가 골목으로 들어서면 '임대 문의' 현수막이 내걸린 빈 점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철강사의 감산과 경영악화가 근로자들의 지갑을 닫게 만들었고, 이것이 곧 지역 자영업자들의 매출절벽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산업과 생활경제의 동반 침체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취재 결과, 오천지역 중심상권인 서문사거리 일대의 상가 공실률은 약 30% 수준으로 파악됐다. 아직 파국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유동인구가 적은 2층 이상 점포의 공실률은 70%에 육박하면서 전체적인 상권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된다. 지금의 추세가 멈추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상권 전체가 위험 수위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곳에서 15년째 음식점을 운영해온 상인 C씨는 "예전에는 퇴근시간만 되면 공단 회식 예약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지금은 예약 전화 자체가 끊겼다"며 "2~3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이 30% 이상 급감했는데 임대료와 인건비는 그대로라 하루하루 버티는 게 기적"이라고 토로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 역시 "2년 전만 해도 권리금이 형성되던 요지의 상가들조차 지금은 문의가 드물다"며 "상가 매매가도 하락세로 돌아서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투자위축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오천상권의 몰락에는 철강경기 부진이라는 외부요인 외에도 포항시의 도시확장 정책에 따른 구조적 결함이 자리잡고 있다. 초곡, 양덕, 문덕 등 새로운 대규모 주거단지가 조성되면서 기존 구도심에 머물던 인구가 분산된 것이다. 세련된 인프라를 갖춘 신도심으로 소비 동선이 이동하면서 오천 구도심은 유동 인구가 급감하는 '공동화 현상'을 피하지 못했다.
오염만 오천읍개발자문위원장은 "철강산업의 침체가 소비위축을 불러온 근본 원인이라면, 인구의 신도심 분산은 구도심 상권의 호흡기를 떼어버린 격"이라고 진단했다. 주거지의 확장은 도시 전체의 외연을 넓혔을지 모르나, 한정된 인구 구조 속에서 기존 상권의 매출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산업위기와 정책적 소외가 맞물리며 오천상권은 퇴로 없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게 됐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위기가 일시적인 경기 순환을 넘어 구조적 쇠퇴로 고착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상가 공실 증가는 임대료 하락과 건물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지역 내 재투자 위축을 불러오는 악순환의 굴레를 만들기 때문이다. 단순한 단기 금융 지원이나 일회성 행사만으로는 이 거대한 흐름을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확장에서 재생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문하고 있다. 오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외곽 위주의 확장개발을 멈추고, 구도심을 압축적으로 재구성해 사람이 다시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원, 체육시설, 문화센터 등 생활밀착형 인프라를 구도심 중심부에 집중 배치해 시민들이 머물고 즐길 수 있는 체류형 공간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제언이다. 하드웨어 중심의 개발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인프라가 결합된 '압축 재생 전략'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오천상권의 붕괴는 단순한 자영업자들의 영업난을 넘어 지역공동체 붕괴의 전초현상으로 읽힌다. "상권이 무너지면 민심도 흔들린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지역주민들이 느끼는 심리적 저지선이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철강산업의 가동률 하락이 골목상점의 폐업으로 이어지는 현실은, 포항이라는 도시가 거대 산업과 미세한 생활경제가 촘촘히 엮인 하나의 생태계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철강산업의 부활 없이는 상권의 반등도 어렵지만, 동시에 구도심 재생을 통한 소비 기반 복구 없이는 지역경제의 자생력을 회복하기 힘들다. 지금 오천의 빈 점포들이 보내는 SOS는 포항 경제 전체의 미래를 가늠하는 엄중한 지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 이 균열을 방치한다면, 포항의 뿌리인 지역공동체 기반마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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