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과메기문화관에서 판매 중인 통마리과메기. 전준혁기자
과메기의 본고장 구룡포항 전경. 전준혁기자
경북 동해안의 푸른 바다가 단순한 어장을 넘어 'K-푸드'의 전초기지로 거듭나고 있다. 기후 위기와 어촌 고령화라는 거친 파도 속에서 우리 수산업은 혁신과 첨단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중이다. 영남일보는 겨울 '별미'에서 세계적 위생 기준을 갖춘 수출 효자로 변신한 포항 과메기, 자원 보호와 브랜드 가치를 동시에 지켜내는 대게·붉은대게, 수입 의존을 끝내고 'K-연어'의 심장이 될 포항 스마트 양식의 현장을 차례로 조명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지역 어민들의 땀방울과 미래 산업으로의 도약은 경북 수산업이 다시 뛰는 원동력이다. 동해안에서 시작된 푸른 혁명이 전 세계 식탁을 어떻게 점령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탕후루 옆 과메기, 세대를 뛰어넘은 맛의 진화
과메기 생산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던 2월, 포항시 남구 구룡포 시장을 찾았다. 본고장답게 구룡포 시장 상점들은 경쟁하듯 앞다퉈 과메기를 진열해 놓고 있었다. 시장을 거닐며 마주한 가장 인상적이고도 낯선 풍경은, 이른바 'MZ세대'의 대표적인 길거리 간식으로 꼽히는 탕후루 판매대 바로 옆에 과메기가 나란히 진열된 모습이었다. 매대 위에 놓인 과메기는 곁들임 채소와 함께 말끔히 손질돼 포장된 상태여서 과거 시장통을 채우던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전혀 없었다. 위생적이고 깔끔한 자태를 뽐내는 과메기 팩 앞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데이트를 즐기러 나온 젊은 연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세대의 장벽을 허문 지역 특산물의 진화를 눈앞에서 확인한 순간이었다.
문득 어린 시절 아련한 기억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1990년대, 겨울철 집에 귀한 손님이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으레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드는 베란다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겨우내 매달아 두어 꼬들꼬들하게 마른 투박한 '통과메기'가 있었다. 어머니가 신문지를 넓게 깔고 앉아 익숙한 솜씨로 기름진 껍질을 벗겨내고 살점을 쭉쭉 찢어 접시에 내어주면, 아버지와 손님들은 초고추장에 그것을 푹 찍어 달게 술잔을 기울였다. 베란다 한구석을 차지하던 그 투박한 통과메기가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이제는 젊은이들의 지갑을 기꺼이 열게 만드는 세련된 밀키트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구룡포 시장에서 과메기를 매대에 진열해놓고 있다. 전준혁기자
◆ 반짝 유행이 아닌 '탄탄한 기본기' 갖춘 겨울철 으뜸 영양식
최근 먹거리 트렌드를 살펴보면 두바이쫀득쿠키, 일명 '두쫀쿠'와 같은 디저트류가 화제다. 하지만 이는 소셜미디어 등에서 반짝 화제를 모았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슈 몰이로 잠시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는 있어도 식품으로서 튼튼한 기본 바탕이 없으면 결코 인기가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과메기는 오랜 역사와 탁월한 영양학적 가치에 뛰어난 맛까지 기본 조건을 두루 갖춘 '진짜' 먹거리다.
과메기의 끈질긴 생명력은 설화 등을 수록한 재담집 '소천소지(笑天笑地)'에서도 확인된다. 한겨울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나뭇가지에 눈이 꿰인 채 얼어 죽은 청어(과메기의 어원이 관목청어·貫目靑魚다)를 찢어 먹고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냈다는 설화는 과메기가 척박한 환경 속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훌륭한 생존 식량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현대에 이르러 과메기는 으뜸 건강식으로 진화했다. 불포화 지방산인 EPA와 DHA가 풍부해 혈관을 확장하고 나쁜 콜레스테롤을 낮춰 심혈관 질환을 예방한다. 다이어트에 열심인 현대인에게 과메기의 질 좋은 단백질은 더없이 훌륭한 영양 보충제다. 어디 그뿐인가. 생미역과 김, 실파, 마늘에 곁들여 한 쌈 크게 싸 먹는 방식은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환상의 커플'이다. 체내 유해 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물질과 해조류의 알긴산 성분이 더해져 소화 흡수를 돕고 비만을 예방해주니,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사랑받는 저력은 바로 이 빈틈없는 영양과 맛에서 나온다.
◆ 5천770t의 호황에서 1천580t 추락까지… 뼈아픈 성장통
전통 향토 식품이던 과메기는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2000년대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의 궤도에 오른다. 2007년 정부의 '구룡포 과메기 산업특구' 지정과 함께 전국적인 수산물로 도약했고, 전성기였던 2013~2014년 시즌에는 구룡포 일대의 400여개 덕장에서 연간 5천770t을 생산하며 750억원이라는 막대한 판매액을 달성했다.
하지만 팽창의 달콤함에 취해 있던 구룡포에 치명적인 성장통이 찾아왔다. 10여년 전, 일부 덕장의 비양심적이고 열악한 작업 환경이 연이어 주요 언론을 통해 폭로된 것이다. 맨바닥에 생선을 널어 말리고, 고인 물로 대충 씻어내는 영상은 전국적인 공분을 불렀다.
위생에 대한 불신은 기후 변화에 따른 꽁치 어획량 감소와 맞물려 돌이킬 수 없는 소비 절벽으로 이어졌다. 과메기 생산량은 언론의 문제제기 이후인 2016년 3천679t으로 급감했고, 2019년에는 2천96t으로 반토막 났다.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던 생산량은 급기야 1천t대까지 주저앉았다. 불과 10년 만에 산업 규모가 3분의 1토막 나며 존폐 벼랑 끝에 선 것이다.
과메기 등을 생산하는 가공업체 보성수산의 내부 작업 모습. 전준혁
◆ '물'과 '바닥'부터 다 바꿨다… 생산 체계를 뒤엎은 혁명
10년 동안 어민들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는다"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감 속에서 포항시와 어민들은 뼈를 깎는 강력한 '위생 생산 가이드라인'을 전격 도입했다.
가장 먼저 혁신의 칼을 댄 곳은 '물'이었다. 비린내와 각종 세균 번식의 온상으로 지목됐던 해수 세척을 현장에서 전면 금지했다. 수질 검사를 완벽하게 통과한 깨끗한 지하수나 상수도를 이용해 3차례에 걸친 꼼꼼한 단계별 세척 공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의무화했다. 흐르는 맑은 물에 불순물이 완전히 씻겨나간 원물만이 건조대에 오를 자격을 얻었다.
작업 공간의 구획화도 철저하게 이뤄졌다. 과거 좁은 공간에서 무분별하게 뒤섞여 진행되던 공정을 원물 해동, 할복, 세척, 건조, 포장 구역으로 벽을 쳐 분리해 교차 오염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먼지와 해충에 무방비로 노출되던 노지 바닥 건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지상에서 떨어진 위생 건조대와 스테인리스 금속 대차, 촘촘한 방충망과 환풍 설비를 갖춘 현대식 실내 건조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낡은 관행과 완벽히 단절하며 고품질 가공 식품으로 체질을 완전히 뜯어고친 것이다.
◆ 10년의 터널을 지나 다시 그린 'V자 반등'
살을 도려내는 듯한 혁신의 고통은 컸지만, 위생이란 타협할 수 없는 기본 원칙을 바로 세우자 변화가 시작됐다. 떠났던 소비자의 발길이 10년 만에 다시 구룡포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 깐깐하게 건강을 따지는 소비 흐름이 확산되면서, 환골탈태한 과메기는 조금씩 신뢰를 회복했다.
위생 혁신의 결실은 통계 수치로도 명확하게 증명된다. 지난 시즌(2023~2024년) 역대 최저치인 1천580t(570억원)까지 떨어졌던 과메기 생산량은, 이번 2024~2025년 시즌 2천128t으로 극적인 V자 반등에 성공했다. 판매 금액 역시 768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34%나 급증하며, 전성기 시절의 판매 규모(750억원)를 웃도는 경제적 가치를 온전히 회복했다.
치명적인 오명을 맑은 물로 씻어낸 구룡포 어민들의 자정 노력과 빛나는 성공 스토리는, 현재 기후 위기로 생존을 고민하는 대한민국 동해안 수산업 전체에 가장 명확하고 뚜렷한 생존의 방향타를 제시하고 있다.
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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