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교동 연화지 전경. 김천시 제공
벚꽃시즌의 화려한 연화지 야경. 김천시 제공
김천 교동 연화지 봉황루. 박현주 기자
매년 봄이 다가오면 경북 김천의 '교동 연화지'는 분홍빛 마법에 걸린다. 연못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릴 무렵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상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어둠이 내린 뒤 화려한 조명을 입은 벚꽃이 수면 위로 데칼코마니처럼 투영되는 야경은 가히 압권이다. 하지만 이곳의 화사한 봄의 향연 뒤편에는 김천의 시작과 흥망성쇠를 함께한 '천년의 서사'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천 행정의 심장, '교동 읍치'의 영광과 변천
김천시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교동은 결코 빠질 수 없는 '뿌리'와 같은 곳이다. 신라 시대 '동잠현'으로 불리던 교동은 757년(경덕왕 16년) '김산현'으로 바꾼 뒤 조선 태종에 이르러 '김산군'으로 승격해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의 '김천군'이 탄생하기 전까지, 교동은 1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행정과 교육의 중심지였다. 지금의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은 과거 김산군청이 위용을 자랑하던 터였다. 그러나 1905년 경부선 철도의 개통은 교동의 운명을 바꿨다. 철도역이 들어선 평화동을 중심으로 신시가지가 형성되면서 행정기관들이 하나둘 자리를 옮겼고, 천년을 이어온 교동의 읍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렸다.
◆자연 습지에서 선비의 풍류 공간으로
현재 김천시가 수변공원으로 정성껏 관리하는 2만 9,000여 ㎡ 규모의 연화지는 흥미로운 가설을 품고 있다. 평범한 농업용 저수지로 만들어졌다기에는 정취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김천 역사와 문화계에서는 과거 대규모 마을 앞에 오수를 정화하기 위해 형성됐던 습지가 연화지의 원형일 것으로 보고 있다.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은 "조선 시대 선비들 사이에서 연못을 조성하고 풍류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마을 앞 습지가 자연스럽게 관상용 연못으로 가꿔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연화지의 이름에 얽힌 '솔개 전설'은 이곳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애초 연꽃을 뜻하는 '연화(蓮花)'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조선 숙종 때 김산군수 윤택이 꿈속에서 솔개가 봉황으로 변해 날아오르는 길조를 본 뒤 '솔개 연(鳶)'과 '시끄러울 화(嘩)'를 쓴 '연화지'로 고쳐 불렀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당시 연화지는 둘레가 900m가 넘을 정도로 훨씬 웅장한 규모였다는 기록도 있다.
◆섬 위에 핀 건축 미학, '봉황대'의 재발견
연화지 중앙의 네 개 인공섬 중 가장 큰 섬 위에 우뚝 선 '봉황대'는 과거 공적 공간이었음을 상징하는 이정표다. 1700년 김산관아 뒤편에 '읍취헌'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던 누정은 1838년 이능연 군수에 의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봉황대는 일반적인 정자와는 궤를 달리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섬의 높이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아래쪽 기둥을 짧게 설계했다. 중앙에 방을 두어 추운 겨울에도 손님을 맞이하거나 회합을 가질 수 있도록 실용성을 높였다. 과거에는 수양버들이 흐드러진 연못가에 연꽃이 가득 피어난 절경 속에 봉황대가 자리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버드나무가 베어지고 벚나무가 지금의 풍경을 만들었다.
◆벚꽃 시즌을 넘어 사계절 역사 거점으로
현재 연화지는 아쉽게도 1년 중 가장 화려한 '벚꽃 보름'을 끝나면, 다소 정적인 공간으로 남는다. 김천시는 이러한 연화지의 잠재력을 깨우기 위해 대대적인 변신을 준비 중이다. 최근 연화지 인근에 옛 김산관아를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현대적 감각의 도서관 건립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 벨트 구축을 한다. 인접한 김천시종합스포츠타운과의 연계를 통해 상춘객은 물론 사계절 쉼 없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역사 문화 랜드마크'로 키운다는 복안이다.
1천 년 전 관원이 드나들던 길목은 이제 시민들의 산책로가 됐고, 선비들이 시를 읊던 연못은 사진 명소가 되었다. 김천 연화지는 벚꽃의 미학을 넘어, 우리가 잊고 지냈던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고 있다.
송 사무국장은 "향토사의 시작점인 교동 연화지는 김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큰 그릇이다. 꽃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묵직한 과거사를 공유할 때 김천의 정체성은 확고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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