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퇴계 학맥이 숨 쉬는 배움의 마루, 월천서당

  •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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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28 10:46  |  발행일 2026-02-28
퇴계 학맥이 숨 쉬는 배움의 마루, 월천서당<안동시 제공>

퇴계 학맥이 숨 쉬는 배움의 마루, 월천서당<안동시 제공>

월천서당 현판은 스승인 이황이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진다.<안동시 제공>

'월천서당' 현판은 스승인 이황이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진다.<안동시 제공>

-선비정신이 오늘을 비추는 안동의 문화유산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월천길 437-7. 안동국제컨벤션센터 아래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관광지의 소란과는 결이 전혀 다른 고요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낮은 담장 너머로 기와지붕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곳이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라 '배움의 자리'였음을 직감하게 된다. 조선 선비정신과 퇴계 학맥의 전통을 간직한 월천서당이다.


월천서당은 1539년, 조선 중종 34년에 세워졌다. 퇴계 이황의 제자인 월천 조목 선생이 후학을 기르고 학문을 닦기 위해 직접 터를 잡았다. 서당이라는 이름처럼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곳에 깃든 학문적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1982년 12월 1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된 것도 이러한 역사성과 정신적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마루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현판이다. '월천서당'이라 적힌 글씨는 스승인 이황이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진다. 퇴계가 제자의 학문적 뜻을 인정하고 격려하며 남긴 글씨다. 한 장의 현판이지만, 그 안에는 스승과 제자를 잇는 학문의 계보와 신뢰가 오롯이 담겨 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ㅡ'자형 목조 단층 와가. 중앙에 두 칸의 마루를 두고 좌우에 통간방을 배치한 홑처마집 구조로, 군더더기 없는 조선시대 서당 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화려한 장식이나 위세를 드러내는 요소는 없다. 대신 단정함과 절제, 그리고 배움을 위한 공간이라는 목적성이 또렷하다. 전체 면적은 374㎡로 기록돼 있다.


기록에 따르면 월천서당은 1590년 한 차례 개수됐고, 현재의 건물은 이후 중수를 거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큰 변형 없이 형태를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이 서당은 단순한 교육 시설을 넘어 조선 지식인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전하는 건축 유산으로 평가된다.


월천서당의 주인인 조목 선생(1524~1606)은 명종 7년 생원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입학했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공조참판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의 삶을 규정하는 핵심은 벼슬이 아니었다. 벼슬보다 학문과 절의를 중시했고, 40여 년의 관직 생활 중 실제 봉직 기간은 4년 남짓에 불과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관직에 머무르기보다는 학문을 닦고 제자를 기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붓을 내려놓고 의병을 모집했다. 학자이자 선비였지만, 국가의 위기 앞에서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이러한 삶의 궤적은 그가 퇴계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도산서원 상덕사에 종향된 이유이기도 하다. 학문과 실천, 절의가 하나로 이어진 인물이라는 평가다.


월천서당의 마루에 앉아 있으면 도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흐르는 낙동강 물길과 완만한 산세가 겹쳐지며, 이곳이 왜 학문을 닦기에 적합한 자리였는지를 설명해준다.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하고 사유를 깊게 하려 했던 조선 선비들의 태도가 공간 곳곳에 스며 있다.


오늘날 월천서당은 더 이상 후학들이 모여 글을 읽는 교육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그 역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곳은 지금도 묻는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학문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시험과 성과로만 평가되는 교육 현실 속에서, 월천서당은 학문이 삶의 태도이자 사회적 책임과 맞닿아 있음을 조용히 일깨운다.


관광지로서의 화려함은 없지만, 월천서당을 찾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퇴계 학맥을 잇는 교육의 터전, 조선 선비정신을 간직한 안동의 문화유산. 월천서당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성찰하게 하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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