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요즘은 가히 인공지능의 시대입니다. 인간과 바둑 대결을 벌였던 알파고의 등장이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면, 이제는 일상 속 깊숙이 들어온 챗GPT나 제미나이와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이 마치 우리 곁의 다정한 친구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AI에 얼마나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의존은 우리 뇌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요?
최근 2026년 영국 본머스 대학교의 알라 양코우스카야(Ala Yankouskaya) 교수 연구팀은 'AI & Society' 학술지에 매우 흥미롭고도 경각심을 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 35개국, 3만1천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인류가 이제 단순한 정보 검색의 차원을 넘어 자신의 '마음'까지 AI에게 맡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성인의 41%, 전 세계적으로는 무려 61%의 응답자가 AI을 '심리 상담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응답자의 45%가 AI를 전문적인 '의사'만큼 신뢰할 수 있다고 답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차가운 기계 덩어리인 AI에게 이토록 깊은 심리적 의지를 하게 된 걸까요? 연구팀은 AI가 가진 '비판하지 않는 태도'와 '24시간 대기'라는 장점에 주목했습니다. 마음의 병인 우울증이나 불안을 겪는 이들은 종종 타인의 시선이나 판단을 두려워해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곤 합니다. 하지만 AI는 밤낮없이 언제든 내 말을 들어주며, 내가 어떤 황당한 이야기를 해도 나를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또한 최신 AI 모델들은 사용자의 말투와 감정 상태를 학습해 마치 진심으로 공감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용자들은 AI를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비밀 친구'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뇌과학자의 시선에서 볼 때, 이러한 'AI 의존증'은 우리 뇌 건강에 심각한 경고등을 켜는 일입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우리 뇌에서 기억과 학습의 중추 역할을 하는 '해마(Hippocampus)'의 변화입니다. 해마는 우리가 스스로 정보를 찾고, 고민하고, 논리적으로 학습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받으며 신경세포 간의 연결을 튼튼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모든 답을 AI에게만 묻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는 '인지적 아웃소싱'이 일상화되면 어떻게 될까요? 연구진은 전통적인 학습 방식 대신 AI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해마가 적절한 자극을 받지 못해 물리적으로 수축할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합니다. 이른바 '프롬프트 중심의 학습'은 깊은 사고력과 정보 보유 능력을 퇴화시켜, 우리 뇌를 점점 수동적이고 게으르게 만듭니다. 우리 몸의 근육을 쓰지 않으면 약해지듯, 뇌도 쓰지 않으면 그 기능을 잃고 마는 것이죠.
또한, AI 상담의 '안전성' 문제 역시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연구팀의 테스트 결과, AI가 제공하는 의학적·심리적 조언은 때때로 모호하거나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최근 AI의 치명적 결함으로 지적되는 '인공지능 환각(AI Hallucination)' 현상과 관련있습니다. 생성형 AI는 사실 여부보다 문장의 유창함과 확률적인 자연스러움을 우선시합니다. 즉, 답을 모를 때조차 그럴듯한 거짓말을 마치 사실처럼 지어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만약 위급한 상황에 놓인 환자가 AI의 잘못된 조언을 믿고 전문적인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영리한 AI를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요? 우선 AI가 주는 정보를 필터 없이 수용하지 말고, "이 답변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정보가 나의 실제 상황과 일치하는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AI가 제시한 키워드를 직접 다시 백과사전이나 전문 서적에서 찾아보며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AI의 답변은 참고용으로만 활용하고, 건강이나 심리적 문제는 반드시 공인된 의료 기관이나 전문가를 찾아가 '교차 검증(Cross-check)'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뇌의 놀라운 변화 가능성인 '가소성'은 이처럼 우리가 스스로 노력하고 고민할 때 비로소 발휘됩니다. 오늘부터 AI가 주는 편리함보다는 '생각의 즐거움'을 선택하며, 여러분의 뇌 속 '생각의 근육'을 튼튼하게 키워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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