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만이라도
◆나 하나만이라도/김은수 지음/도서출판 은수/130쪽/1만3천원
AI 시대의 문학적 전환 속에서 김은수 시인은 새로운 시적 방법론으로서 '의미 시(意味詩)'를 제창하며 주목받고 있다. 그는 현대시의 시적 사고를 단순한 감성의 표출에 머무르지 않고, 4차원의 진리를 탐색하는 인식의 확장으로 이끌고자 한다. 이러한 시적 지향은 그의 의미 디카 시집 '흔들리는 이유'에서 처음 구체화되었으며, 이어 두 번째 의미 시집 '나 하나만이라도'로 심화·확장되었다. 특히 그는 이 시집들을 한국을 비롯해 미국, 러시아, 프랑스, 태국 등 여러 나라 국립대학교 한국어과에 발송하여, 한글 문학의 깊이와 가능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김은수의 시 세계는 간결하고 담백한 언어로 빚어낸 정갈한 미학을 특징으로 한다. 그의 시는 과장이나 수식에 기대지 않고, 체험에서 우러난 삶의 깨달음을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로 형상화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낮은 자세 속에서 시인은 대상과 은밀히 교감하며, 사물에 생명과 인격을 부여하는 활유적 표현을 자주 구사한다. 이로 인해 그의 시편들은 대상이 내면으로 스며들어 재구성되는 심상 풍경으로 드러나며, 자아와 세계가 서로를 비추고 스며드는 서정적 깊이를 획득한다. 또한 그의 시는 자연에 순응하며 그 질서 속에 자신을 놓으려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정신을 바탕에 두고 있다. 자연과 인간, 자아와 세계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로 나아가려는 이러한 태도는 전통 서정시의 맥을 잇는 동시에, 현대적 감각 속에서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영미문학 향연
◆영미문학향연/이정경 지음/도서출판 진서/263쪽/1만7천원
수필가 유당 이정경의 '영미문학향연'은 필자의 저간 방송대 영어영문학과 학부 시절의 열정적인 탐구와 몰입, 앎과 사유의 흔적을 채취한 결과물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W.워즈워스, W.B.예이츠, 존 밀턴, 찰스 디킨스,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등 주로 영미문학의 이해와 감상을 개괄적으로 정리한 영미문학의 향연이다.
문학은 나의 연인이란 책의 머리말에서 보듯이, 문학은 태양을 향해 날아가며 밀랍이 녹아 바다에 추락한 이카루스에 비견된다. 죽음을 불사한 모험은 태양-사랑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이 책에는 학문적 성장의 기록으로서, 사고와 해석의 폭을 확장하는 과정으로서, 신선한 해석의 관점과 시각이 제시되어 있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텍스트를 바라보는 이러한 시도는 해석에 새로움(novelty)과 개성을 부여한다. 특히 '자비(mercy)'라는 종교적·도덕적 가치와 방법을 기준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데서 인문학적 깊이와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하여 기존 연구와는 일정하게 구획되어지며, 또 단편적인 분석이란 한계 속에서도 문학적 통찰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적 진리와 아름다움으로서 문학을 통해 인생을 향유하고 학문을 통해 예술을 완성한다면, 문학은 인생의 다른 이름이다. 유당의 이번 저작은 단순한 과제물 정리와 모음집의 성격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재정립하고, 비평가 혹은 창작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새로이 다지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날들은 그림자도 떼어놓고
◆남아 있는 날들은 그림자도 떼어놓고/노진화 지음/도서출판 이um/132쪽/1만2천원
노진화 시인의 시집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아침 바다와 생명이 끓어오르는 갯벌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시집은 자연의 풍경에서 출발하지만, 단순한 서경에 머물지 않고 가족의 시간과 삶의 진실로 깊이 스며드는 시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푸른빛이 햇살이 사그라진 뒤에야 비로소 숨을 내뿜듯, 시인은 '늘 빛나는 것들'이 물러선 자리에서 드러나는 작고 연약한 존재들의 미세한 빛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 빛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오래 남아 마음을 적시는 생의 본질에 가깝다. 특히 시의 근원적 공간이라 할 '갯벌'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생명의 생성과 순환을 상징하는 모태로 기능한다. 수많은 구멍과 그 사이의 간극에서 태어나는 미세한 생명들은 존재의 끈질김과 연약함을 동시에 드러내며, 그 풍경 위에서 시인은 아버지의 이상과 어머니의 헌신, 그리고 가족을 지탱해 온 희망의 결을 선명하게 길어 올린다. 자연과 가족, 기억과 현재가 하나의 층위로 포개지면서 시는 단단한 정서적 깊이를 획득한다.
또한 이 시집은 슬픔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감정에 함몰되지 않는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다. 과장되지 않은 언어와 생태적 이미지는 삶을 은은하게 환기시키며, 독자의 기억과 감각을 부드럽게 깨운다. 바다와 갯벌이 그러하듯, 이 시집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여운으로 남아 삶의 방향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된다.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우리의 일상을 고요하게 흔들며,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무는 시적 체험을 완성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한은희 지음/도서출판 띠앗/220쪽/1만4천원
현대 사회에는 미아(迷我)가 많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기보다 '타인이 좋아할 만한 것'을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방황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더 중요해진 시대의 탓일까? 혹은 적막한 새벽이 걷히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막막한 아침과 미성숙한 자신의 한 토막을 마주하는 것보다, 외면하는 편이 더 쉬운 탓일까. 한은희의 소설 '나는 누구인가'는 해리성 둔주를 겪는 소년과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정체성 혼란을 겪는 청소년들이 느끼는 심리적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두 소년 모두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사회로부터의 심리적 압박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버린다. 누군가는 기억을 버리고, 누군가는 참된 자아를 버린다. 누군가는 여정 끝에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고, 누군가는 또 한 번 자신을 잃는다. 저자는 사회적 편견과 학교폭력으로 상처 입은 청소년의 현실을 다양한 작품으로 담아냈다. 이번 소설은 이와 같은 청소년기 내적 불안과 갈등을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두 인물 간의 관계와 외적 갈등을 다채롭게 풀어내, 같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과 어른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단원마다 삽입된 네 컷 만화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한편 이 소설은 해외 판권 수출을 위해 지난 3월6일 출판 저작권 전문기업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와 독점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정리=김형범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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