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봄볕이 내린 자리마다 두근두근 일어서는 나무

  • 김남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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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09 11:49  |  수정 2026-04-09 18:24  |  발행일 2026-04-10

'불이문'일까. 운문사 입구, 어느 집의 역사가 서린 듯한 고령의 나무다.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변할 때, 나무는 거기에 있었다. 집이 양옥으로 변한 지금도 우산처럼 펼친 가지로 집을 수호한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상처투성이 자태가 마음 깊이 뿌리를 내렸다. 이 나무를 시작으로 또 다른 나무를 가슴에 심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


청도에서 건천으로 들어서면, 저수지 아래 옛 영화를 한 몸에 담은 고목이 나를 불러 세운다. 한참을 둘러보며 스케치한 후, 2층 카페에서 무리 지어 사는 나무들을 감상한다. 화가들에게 나무는 어떤 존재였을까. 옛 그림이 답이다. 화가들이 그린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정선, 노백도, 종이에 엷은 색, 31.6×55.6㎝, 삼성문화재단 소장

정선, '노백도', 종이에 엷은 색, 31.6×55.6㎝, 삼성문화재단 소장

◆정선의 늙은 스님 같은 나무


나무는 늘 그곳에 있다. 바람이 지나가고, 폭우가 내리칠 때도 어김없이 자리를 지킨다. 숙명이다. 세월의 손찌검에 둥치는 거칠지만 더 단단해졌다. 번개에 잘린 나뭇가지에는 새순이 돋아 상처를 아물게 한다. 처절한 상처에 나무는 깊고 고결해진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노백도(老柏圖)'가 그렇다. 굽이쳐 올라 뻗은 강인한 생명력에 머리를 조아린다.


용이 승천하는 날, 측백나무가 춤을 춘다. 햇빛을 따라 뒤틀린 나무 둥치 위로 짙은 녹색의 잎들이 청춘을 과시한다. 생명은 아름다움의 연속이다. '노백도'는 화가가 70대 초반에 자신의 역량을 과감하게 쏟아 부은 명작이다. 농익은 필력과 점점이 박힌 이파리들의 강약이 하모니를 이뤄 꿈틀거린다.


명작은 시간이 만들고 감상자가 완성한다. 화면 위에 겸재의 낙관과 함께 후일, 대례 스님이 쓴 찬문이 그림에 깊이를 더한다. "겸재의 필법은 오묘해 신령과도 통하네. 백 척(尺)의 굽은 소나무는 늙은 스님의 모습이로세. 가지고 와서 주는 옛 친구 참으로 의미가 있으니. 변하지 않은 마음씨 또한 능히 푸르리라. 대례가 예백에게 주다."


화면 아래쪽에는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이 김윤식(金允植, 1835~1920)의 장수를 축하하면서 글을 남겼다. "겸재 정선 선생은 산수화로써 세상에 이름을 날려 수백 년 동안 그와 필적하는 다른 작품은 보지 못했다. 이 '노백도' 소폭은 붓놀림이 노련하면서도 굳세고, '백(柏, 그림에 있는 노송나무)'의 모습은 구불구불 서려 있으니 득의한 가작이다. '주시(周詩)'의 '무성한 듯 같구나' 하는 뜻에 의미를 붙여본다."


김정희, 고사소요, 종이에 수묵, 24.9×29.7㎝, 간송미술관 소장

김정희, '고사소요', 종이에 수묵, 24.9×29.7㎝, 간송미술관 소장

◆김정희의 선비 같은 나무


측백나무를 뒤로하고 숲으로 들어간다. 새 소리가 맑다. 나뭇가지에 둥지를 튼 새들이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 아름드리나무를 안아본다. 꿋꿋하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강인한 기운을 느낀다. 나무가 어우러진 숲은 그들만의 질서가 있다. 큰 나무 아래 작은 나무, 가까운 나무와 거리를 둔 나무들이 바람과 햇살에 의해 서열이 정해진다. 그 속에서 풀은 나무의 양분을 먹고 자란다. 동물의 은신처가 돼 주고, 새들에게 가지를 내준다. 숲은 인생의 단면도다. 최적의 힐링 장소다.


자연의 소리를 음미하며, 여유를 즐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희, 1786~1856)의 '고사소요(高士逍遙)'에 등장하는 선비가 된다. 선비는 뒷짐을 진 채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읊조리며 바람결에 심신을 맡긴다.


갈필로 큰 바위의 질감을 살린 뒤, 진한 먹을 찍어 돌에 단단한 형태감을 부여했다. 작은 바위와 묵직한 큰 바위 사이로 물이 흘러내린다. 흙과 잡풀을 그려서 땅을 표현하고, 그 위에 소나무를 두었다. 잎을 떨군 나무가 앙상하다. 진한 먹으로 붓의 측면을 사용하여 또 다른 나무를 그렸다. 왼쪽에는 큰 언덕을 갈필로 처리하고, 그 위에 나무 한 그루를 소슬하게 세웠다.


사의적(寫意的)인 기법으로 그린 여러 종류의 나무와 고결한 선비 정신이 빛나는 작품이다. 단출한 내용이 화려하지 않아 더 생동감이 돈다. 정갈한 옷차림의 선비가 사색에 잠긴 모습이 그림처럼 맑다. 왼쪽 위에 배치한 '정희(正喜)' '추사(秋史)'가 꽃처럼 붉다.


마군후, 촌녀채종, 종이에 엷은 색, 24.7×14.6㎝,  간송미술관 소장

마군후, '촌녀채종', 종이에 엷은 색, 24.7×14.6㎝, 간송미술관 소장

◆마군후의 봄볕을 입은 고목


숲속의 나무들이 녹색 물결이다. 녹색으로 물든 숲의 머릿결이 다채롭다. 계절의 온도에 단련돼 피부색이 짙어졌다. 바위 틈새의 물에 의지한 나무와 깊은 산속의 물에 목을 축인 나무의 색이 서로 다르듯, 쨍쨍한 햇살을 받은 나무는 짙은 그늘과 신선한 공기를 선사한다.


봄기운을 머금은 나무 아래 두 아낙이 정담을 나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아낙과 부지런히 나물을 캐면서 말을 쏟아내는 여인이다. 그들에게 그늘은 서늘한 휴식이다. 나물 캐는 여인을 그린 양촌(陽村) 마군후(馬君厚,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는 생몰연대가 확실하지 않은 화가이다. 그의 작품 '촌녀채종(村女採種)'이 활동 시기를 가늠케 한다.


세월을 켜켜이 아로새긴 고목이 휘어져 있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번개도 지나갔다. 둥치는 뻥 뚫리고, 깊은 골이 새겨져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긴 탓일까. 짙푸른 잎이 건장함을 과시한다. 아낙이 봄나물을 캐는 중 아이가 칭얼거리자 나무 등걸에 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다른 여인은 손을 바삐 움직이면서 아낙 쪽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다. 앞쪽에는 점심이 놓여 있다. 봄날의 진경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린 후, '신해중춘경칩일군후사'라고 적었다. 1851년 봄 경칩에 마군후가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나무는 사람과 어울려 있을 때 더 친숙하다. 뒷동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마을의 애환을 보듬어주는 신령스러운 존재다.


강진희, 오음화구도, 종이에 수묵, 34.0×28.0㎝, 간송미술관 소장

강진희, '오음화구도', 종이에 수묵, 34.0×28.0㎝, 간송미술관 소장

◆강진희의 오동나무 그늘


나무는 정원수로 집을 지키며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에너지를 준다. 마당은 작은 숲이 되었다. 주인은 집 뒤로 대나무를 심고, 사철 볼 수 있는 꽃나무와 분재한 소나무도 장식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오동나무를 심었다. 오동나무의 풍성한 이파리는 그늘도 좋지만 녹색 하늘을 만들어준다. 그 밑에서 차를 마신다. 여기가 낙원이다.


이파리가 너울거리는 오동나무를 배경으로 네 사람이 담소를 나눈다. 청운(靑雲) 강진희(姜璡熙, 1851~1919)의 '오음화구도(梧陰話舊圖)'이다. '오음화구도'는 오동나무 그늘에서 옛일을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강진희는 1888년 미국 워싱턴에서 서화로 교유한 대한제국공사관 수행원으로 활동하다가 귀국했다. 친구들과 회포를 풀고자 자신의 집에서 모임을 가진다.


강을 끼고 멀리 산이 낮게 펼쳐져 있다. 경관이 수려하다. 왼쪽에는 산 언저리 비탈에 나무가 우거져 있고, 작은 돌과 언덕 사이로 꽃나무를 심었다. 두 채의 정갈한 집 뒤에도 나무를 심어 자연의 운치를 느끼게 설계했다. 강가에는 둔덕을 올려 다리를 만들었다. 마당에는 집이 바로 보이지 않게 괴석을 세웠다. 그 옆에 오동나무가 주인공이다. 탁자 위에 찻잔이 놓여 있다. 네 명의 인물이 흥겨워 보인다.


오른쪽 화면에는 늦게 도착한 한 인물이 다리를 건너오고 있는 중이다. 마당 한쪽에서 시동이 찻물을 올려놓고 주인의 호출을 기다린다. 화면 위에 "기축년(1889) 봄에 미국에서 돌아와 청운산방에 모여 차를 달여 마시다"라는 화제로 그날을 기록했다.


수묵으로 묘사한 나무와 인물, 주위의 배경이 어울려 담백하다. 강바람에 나뭇가지와 잎이 휘날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구수한 차향이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든다.


◆화폭에 뿌리 내린 나무


한 달이 지난 지금 20번 국도를 달린다. 외롭게 무리 지어 서 있던 나무들이 화사하다. 운문사 불이문 나무에도 새싹이 피어 연둣빛 우산을 펼쳤다. 건천 입구, 수문장 나무에도 봄물이 들었다. 소슬하던 나무, 화려한 나무, 그들이 나를 따라와 화폭에 뿌리를 내렸다. 나무를 찾아서 길을 떠난다. 4월은 나무 심기 좋은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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