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인간적 맥락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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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17 08:47  |  발행일 2026-04-17

'인공지능(AI) 쇼크'가 또 인간을 덮쳤다. 지난 14일 한국기원 소속 프로바둑 기사가 5점을 깔고도 그린스팟이라는 바둑 AI에게 무릎을 꿇었다. '절대 뚫리지 않는 치수'로 여겨졌던 5점 접바둑의 벽이 무너졌다. 5점은 60집에 해당한다. 그린스팟은 초반 60집의 불리함을 뒤집고 완벽한 '블루스팟(최선의 길)'을 찾아내며 역전승했다.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패한 이후 바둑계에서 일어난 최대 사건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알파고 쇼크'보다 더 충격적이고 잔인하다. 인간이 AI에게 유린당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인간이 위로받을 수 있는 대목은 있다. 그린스팟과 프로 기사의 대결은 각자 5분에 30초 초읽기 3회의 '속기 대국'이었다. 시간의 압박 속에 실수하기 쉬운 '인간적 맥락'이 대국의 조건에 포함됐다. 실제 그린스팟에게 패한 프로 기사는 실수를 연발했다. 그린스팟은 안전하게 이기는 수를 찾으려는 프로 기사의 느슨해진 틈을 파고들었다. 인간의 실수가 AI에게 역전의 발판이 된 셈이다. 실수는 인간다움의 증거이기도 하다. 중요한 순간에 손이 떨리고, 단 한 번의 수읽기 착오에 머릿속이 하얘지는 게 인간이다. 감정이 없는 AI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인간은 실수하며 배우는 맥락도 가지고 있다. AI는 정답이 없으면 멈추거나 오작동하지만, 인간은 오답 속에서도 길을 찾아낸다. 그린스팟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너희가 만든 도구인가, 아니면 너희를 지배하는 새로운 신인가' 완벽한 지능을 마주한 인간이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역설적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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