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전국 각 고등학교의 명문대학 진학율을 보도하는 잡지들. 도쿄에 있는 전통적인 도쿄대, 와세다대, 게이오대학 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 그 지역의 유명 대학, 교토대, 오사카대학 등으로 가는 숫자도 많아서 우리와 같이 도쿄에만 몰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임재양 원장 제공>
나는 중학교 입시를 치른 세대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입시 경쟁이 심했다. 일본의 입시 문제가 우리네 학원가에 나돌기도 했다. 1980년대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며 그런 풍경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는데 요즘 한국은 '의대 열풍'과 '영어유치원'으로 대변되는 사교육 문제가 시끄러운 상태다. 일본은 입시제도가 조용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일본의 입시 열기 또한 우리 못지않게 대단했다. 일본의 신학기는 4월에 시작된다. 3월이 되자, 주간지마다 유명 대학 합격자 배출 고교 특집 기사가 줄을 이었고, 의대 입학은 별도의 특집으로 다뤄졌다. 고등학교 정문에 내걸린 합격 플래카드도 많았고, 유명 대학의 합격자 수를 나타내는 학원들의 광고도 요란했다. 오후 8시가 넘은 시각, 주요 주거지 근처에서는 학원에서 몰려나오는 초등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일본 3대 사교육 업체 본사는 20층이 넘는 현대식 건물이었으며, 1년 학원비는 우리나라와 비슷할 정도로 비쌌다.
일본 역시 지독한 학력 사회이며 명문대 진학을 중시한다. 다만 우리와 다른 점이 있었다. 대다수 학생들이 입시에 매달리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특정 계층만이 사교육과 일류대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명문대를 나오거나 의사가 되어도 급여 차이가 우리처럼 많이 나지 않는다. 내가 만난 흙수저의 젊은 의사는 봉급만으로 평생 도쿄의 '23구(23개 특별구 지칭)'에 맨션을 살 수 없다고 했다. 둘째, 청년 취업이 워낙 잘 되는 데다 지방의 대학들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수도권 집중 현상이 우리보다 덜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일본은 문부과학성 주도로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전국 학력 테스트'를 실시한다. 경쟁 유도가 목적이 아니라 교육 수준을 파악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참고용이다. 매년 4월 국어와 수학(산수) 위주로 치러진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 시험에서 거의 1위는 아키타현의 히가시나루세(東成瀬) 초등학교가 차지한다. 아키타현은 서북 지방의 작고 가난한 시골이다. 전교생이 100명 남짓한 이 시골 학교가 전국 최상위 성적을 내는 비결을 배우러 일본 전역과 한국에서 발길이 이어진다.
일본은 대학뿐만이 아니라 유명 중학교 합격자들을 밝히는 곳도 많이 있다. 중·고등 6년간 통합 과정을 뽑는 중학교(中古 一貫校)는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 보이는 중학교는 그중에서도 도쿄에서 유명한 학교다.<임재양 원장 제공>
비결은 공교육과 가정 교육의 조화에 있었다. 교사를 예우해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적은 수의 학생을 밀착 지도한다. 학생은 '가정 학습 노트'를 통해 스스로 기록하고, 부모와 학교가 이를 매일 점검하며 자기주도학습을 돕는다. 충분한 수면과 아침 식사 등 규칙적인 생활 습관도 엄격히 지도한다.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을 '공동체 자산'으로 여기며 오고가는 아이들을 지극정성으로 지켜본다.
이 같은 성과 덕분에 아키타현은 농촌임에도 중학생 수가 줄지 않는다. 중학교 역시 전국 학력 시험에서 1, 2위를 다투고, 지역 내 고등학교들은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명문고로 자리 잡았다.
궁금한 점은, 왜 수많은 곳에서 이 시스템을 배우러 오는데도 다른 지역은 변하지 않는가? 현장 관계자들은 타 지역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시설이나 프로그램'만 적어서 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민들이 오랜 시간 치열하게 고민하며 쌓아온 '과정'과 '철학'은 보지 않은 채 껍데기만 빌려 가니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환상적인 교육 제도를 갖추고, 산 좋고 물이 좋아 쌀 등 농산물이 일본 최고를 자랑하지만 아키타현은 전국 자살률 1위이자, 인구 소멸이 가장 급격히 진행되는 지역 중 하나다. 왜 이런 모순적인 현상이 발생하는지 아키타현에서는 온갖 대책을 세워보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도 무거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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