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우의 스토리 인문학] 여기서 보면 다 우는 것처럼 보인다

  • 배진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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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23 10:49  |  발행일 2026-04-24
우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될 때가 있다. 나와 같이 울고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둔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될 때가 있다. 나와 같이 울고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둔다. <게티이미지뱅크>

자주 운다.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장례식장에서도. 꿈에서 깼을 때도.


중고로 산 에어컨이 한여름에 고장 났을 때도 울었다. 에어컨에서 나오는 미지근한 바람, 끈적이는 공기, 축축한 이불, 수리 센터와 통화하기 위해 기다리는 답답함. 살고 싶어서 울었다. 기사에게 수리비를 듣고는 너무 먹먹해져 울지 않았다. 기뻐서 울었던 적도 몇 번 있었던 것 같다만, 잘 생각나지 않는다.


작년 가을. 회사 동료가 다짜고짜 사과를 했다. 내가 소설을 읽고 우는 모습을 상상했더라며. 내가 우는 모습을 상상하니 무언가 민망해졌다면서. 나는 사과를 받았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동료의 상상에서 나는 어떻게 울고 있는 걸까. 왜 사과를 한 걸까? 우는 모습이 나의 약한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내가 우는 모습이 어떤지 나는 본 적이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처럼 멋지진 않을 것이다. 그냥 화면과 대사가 맞지 않는 저화질 영상처럼 울었을 것이다. 제일 약하고 무방비한 상태로.


그러고 보면 눈물은 참 이상하다. 참 따뜻하다. 따뜻하지 않으면 안 되는 듯이. 슬퍼하는 중에도 이 온기만은 기억하렴. 이런 것일까.


우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각이 된다.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밖으로 나오면서 새로운 감각을 깨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고. 나와 같이 울고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둔다.


당신은 어떤 자세로 우는가. 눈물 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신철규 지음/문학동네/172쪽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신철규 지음/문학동네/172쪽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 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 안으로 말아 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눈물의 중력, 신철규)


엎드릴 수밖에 없는 눈물의 무게를 생각한다. 당신의 눈물은 어떤가. 어떤 일을 겪어야지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가. 처참하게 무너진 사람은 눈물의 형태로 굳을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만큼 무거운 눈물은 무게를 가지게 된다.


눈물은 가장 낮은 음을 가진 언어일 것이다. 눈물은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에 먼저 가 있는 몸의 한 부분일 것이다. 눈물은 나를 먼저 앞지를 것이다.


나는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걸 항상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눈물의 역할은 무엇일까. 잠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마지막 수단일지도 모른다.


사연마다 눈물의 무게는 다르다. 그건 잘 알고 있다. 나의 눈물은 정직하다. 눈물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 눈 안에서 눈 밖으로 넘어오면 잃어버리는 감각이 있다. 잃어버려서 생기는 것들이 있다. 여러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몸을 말고 퉁퉁 불었으나 딱딱한 방울이 된다. 동그랗고 단단한 방울 무게도 잴 수 없는 그런 눈물방울. 눈물이 몸 밖으로 새어 나왔다.


향수/정지용 지음/애플북스/248쪽

향수/정지용 지음/애플북스/248쪽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유리창1, 정지용)


미처 흐르지 못한 눈물도 있다. 떨어지지 않고 맺혀 있는 눈물 때문에 하늘에 떠 있는 별이 물을 먹은 채로 퉁퉁 불어 있다.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은 경계다. 눈물 이전과 눈물 이후로 선을 만든다. 창 안에서 창 밖으로 향하는 눈물이 맺혀 있다. 입김이 얇은 커튼처럼 나와 너를 나눈다. 말이 적을수록 눈물은 더 많은 사연을 담는다.


결국.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몇 없다. 어차피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와 다시 마주친다. 눈물을 흘리며 읽던 책에는 결말이 있었고, 영화는 결말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작품도 몇이 있었고, 장례식장에서 나는 그 사람과 이별을 했다. 중고 에어컨은 어떻게든 수리가 끝나서 여름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새로운 일이 생기고 무섭거나, 슬프거나, 어찌할 수 없어서 나는 또 눈물을 흘리겠지만.


오래 생각한다. 당신 상상에서 내가 울고 있었다며, 나에게 사과했던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사과받지 않아도 되는 일로 사과를 받았다. 울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울음을, 눈물을 생각한다. 그리고 4월이다. 그곳에서 시간과 이곳에서 시간이 다르지 않다. 결국에는 여기서 보면 다 우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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