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1년에 단 하루만 열리는 사찰…문경 봉암사의 숨은 가치”

  • 강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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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25 08:14  |  발행일 2026-04-25
문경 봉암사 경내 전경. 맑게 갠 하늘 아래 단정한 기와지붕의 전각들이 자리하고, 뒤로는 암릉이 드러난 속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강남진기자>

문경 봉암사 경내 전경. 맑게 갠 하늘 아래 단정한 기와지붕의 전각들이 자리하고, 뒤로는 암릉이 드러난 속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강남진기자>

경북 문경시 가은읍 속리산 자락 깊은 산중. 굽이진 산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봉암사는 '우리동네 문화유산'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바로 그 거리감이야말로 이 사찰의 가치를 설명하는 가장 분명한 단서이기도 하다.


봉암사는 관광 사찰이 아니다. 연중 대부분 기간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며, 단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외부인에게 문을 연다. 대중과의 접점을 최소화하는 대신 수행 도량으로서의 본질을 지켜온 것이다.


경내에는 봉암사의 역사성과 전통을 상징하는 문화유산들이 자리한다. 대표적인 것이 국보 지증대사탑이다. 통일신라 말기 고승 지증대사의 사리를 모신 이 승탑은 한국 승탑 양식의 완성형으로 평가된다. 기단과 탑신, 옥개석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절제된 조형미와 안정된 비례를 갖추고 있으며, 화려함을 덜어낸 대신 깊이 있는 상징성을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수행자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단정한 형식미가 돋보인다.


문경 봉암사 경내에 자리한 삼층석탑 전경. 낮은 석재 난간으로 둘러싸인 탑이 중앙에 서 있고, 뒤로는 단청이 화려한 전각과 기와지붕 건물이 이어진다.<강남진기자>

문경 봉암사 경내에 자리한 삼층석탑 전경. 낮은 석재 난간으로 둘러싸인 탑이 중앙에 서 있고, 뒤로는 단청이 화려한 전각과 기와지붕 건물이 이어진다.<강남진기자>

지증대사탑과 나란히 서 있는 국보 지증대사탑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유산이다. 이 탑비에는 지증대사의 생애와 사상, 당대 불교계의 흐름이 담겨 있다. 단순한 기념비를 넘어선 역사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크며, 유려하면서도 힘 있는 서체는 서예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승탑과 탑비가 한 공간에서 온전하게 보존된 사례는 드물어 두 유산이 지니는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경내 한편에 자리한 보물 봉암사 삼층석탑은 봉암사의 또 다른 얼굴이다.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장식을 최소화한 이 석탑은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구조적 안정감과 균형미를 강조한 형태는 화려함보다 절제를 중시하는 사찰의 성격과 맞닿아 있다. 자연 속에 스며든 듯한 모습은 봉암사가 지닌 고요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봉암사의 문화재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수행의 시간 속에서 함께 축적된 '살아 있는 기록'이다. 스님들의 참선과 정진이 중심이 되는 일상 속에서 문화재는 전시물이 아닌 공간의 일부로 존재한다. 이는 많은 사찰이 관광과 문화 기능을 병행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다만 이러한 운영 방식은 방문을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봉암사를 가까이에서 마주할 기회가 단 하루로 제한된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참배객들로 사찰 입구는 이른 시간부터 긴 줄이 이어진다.


문경 봉암사 경내 전경. 전면에는 석재 난간으로 둘러싸인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뒤로는 극락전 현판을 단 단청 건물이 단아하게 서 있다. <강남진기자>

문경 봉암사 경내 전경. 전면에는 석재 난간으로 둘러싸인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뒤로는 '극락전' 현판을 단 단청 건물이 단아하게 서 있다. <강남진기자>

그럼에도 봉암사를 향한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쉽게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공간의 가치를 더욱 또렷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산문 밖에서 바라보는 풍경만으로도 이곳의 깊이를 짐작하려는 이들이 이어지는 이유다.


결국 봉암사는 '열려 있지 않기에 지켜진 공간'이다. 지증대사탑과 지증대사탑비, 봉암사 삼층석탑으로 이어지는 문화유산은 화려함 대신 본질을 택한 시간의 결과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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