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은 전국 지자체가 짊어진 공통의 과제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지역의 활력을 높이고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청년마을 조성 사업'도 그중 하나다. 특히 경북은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많은 11개의 청년마을을 보유하고 있다. 2020년 문경 '달빛탐사대'를 시작으로 2021년 상주 '054마을'·영덕 '뚜벅이마을', 2022년 경주 '가자미마을'·의성 '나만의 성', 예천 '생텀마을'이 청년마을로 선정됐다. 이어 이어 2023년 영천 '취하리'·고령 '뮤즈타운', 지난해 울릉 '미지알지'가 이름을 올렸고, 올해 2곳이 추가되면서 총 11곳으로 확대됐다. 영남일보는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 중인 경북의 청년마을을 소개하고, 향후 청년마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첫 번째 순서는 올해 새롭게 청년마을에 선정된 영주시 이산면의 '소백산예술촌'과 봉화군 재산면의 '그린 가드너스'다. 두 곳 모두 폐교 공간을 활용해 각각 '예술'과 '정원'을 매개로 주민들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영주 소백산예술촌 전경.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7일 경북 영주 소백산예술촌을 찾은 지역 유치원생들이 스웨덴 극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클라우드컬처스 제공>
7일 경북 영주 소백산 예술촌에 이날 열린 공연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마을을 밝히는 '예술 휴게소'…영주 '소백산 예술촌'
7일 오전 경북 영주시 시내에서 차로 10분 남짓 거리에 위치한 폐교 부지. 과거 운동장이었던 공간에 노란 유치원 버스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스웨덴 극단의 공연을 보러온 유치원생 200여 명을 실어나른 차량이다. 지팡이를 짚고 공연을 보러온 마을 어르신들은 "동네에 아이 보기가 참 힘든데 보니까 기분이 좋다"며 반색했다.
이곳은 지역의 청년, 예술가, 주민이 함께 교류하는 '소백산 예술촌'이다. 2002년 영주시 부석면에서 시작된 이곳은 조국원 클라우드 컬처스 대표가 선친의 뜻을 이어 운영해오다 지난해 공간을 잃을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지역 기업인 고려레미콘이 폐교 부지를 무상으로 후원하면서 지금의 보금자리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현재 이곳에는 공연 연출, 디자인, 기획 등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청년 9명이 지내고 있다. 이들 중 4명은 영주 출신이고 나머지 5명은 대구·일산 등지에서 온 외지 청년들이다.
예술촌은 예술인들의 작업공간을 넘어 지역의 문화 갈증을 해소하는 단비 역할을 하고 있다. 대도시에 비해 문화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영주에서 소백산예술촌은 아이들에게는 '나는야 종합 예술가' 프로그램을 통해 생애 첫 예술 경험을 선사했다. 여가 문화에 목마른 성인들에게는 시민극단, 뮤지컬, 도자기 공예 프로그램 등 퇴근 후 즐길 수 있는 문화 활동을 확대했다. 또한 연습 공간이 없어 헤매던 지역 사물놀이 팀과 대학 동아리에도 연습실을 무료로 개방했다.
주민들과의 교감도 끈끈하다. 예술촌이 생기면서 밤늦게까지 불이 켜지자 주민들이 "동네가 밝아졌다"며 반겼다. 예술촌 청년들은 어두운 버스 정류장에 태양열 가로등을 직접 설치하며 주민들의 불편한 부분을 세심하게 살폈다. 조만간 어르신들의 요청에 응해 '마을 노래 교실'도 열 계획이다.
올해 청년마을 선정을 계기로 소백산예술촌은 예술인과 지역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활성화할 계획이다. 체류형 워크숍 '살수 있게 해 Dream(드림)'으로 예술가들이 2주간 머물며 지역을 소재로 활용한 창작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총 5개 작업실을 청년 예술가에게 제공하고, 이들이 매주 최소 1회 이상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예술 교육·공연·전시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상생 모델도 마련할 계획이다.
소백산예술촌은 100석 규모의 소극장과 복합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할 카페도 들어설 예정이다. 소극장이 완공되면 기존 인형극 레퍼토리 등 자체 콘텐츠를 상설 공연화해 공연을 보러 오는 관광객을 유치하는 방식도 구상하고 있다.
소백산 예술촌의 최종 목표는 지역 주민들이 예술 관련 취미를 가지는 즐거움을, 전국 청년 예술가들에게는 쉼과 영감을 주는 '예술휴게소'가 되는 것이다.
조 대표는 "예술촌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결국 예술촌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모이니 다시 예술촌이 됐다"면서 "예술을 하는 청년들이 영주에 오면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청년들과 만나 위로 받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북 2호 민간정원인 '위토피아 가든'.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봉화 재산면 그린 가드너스에서 진행된 '가든 힐링 스테이' 참가자들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사람과 초록 제공>
7일 경북 봉화군 재산면 그린 가드너스에서 활동 중인 청년들이 사무실에서 업무를 하고 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초오지'에 피어난 정원…봉화 '그린 가드너스'
같은날 경북 봉화군 재산면 동면리. 휴대폰 신호마저 희미해지기도 하는 이곳은 이른바 '초오지(Hyper-Remote)'라 불리는 산골이다. 굽이진 산길 끝에 자리한 옛 동면초등학교 부지에 들어서면 모래 운동장 대신 철쭉, 튤립, 차이브 등 각양각색의 꽃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코로나19 여파로 휴교한 대안학교 부지를 정원으로 탈바꿈시킨 이곳은 경북 민간정원 2호 '위토피아 가든'이다. 사람과 초록이 운영하는 청년마을 '그린 가드너스(Green Gardeners)'는 폐교를 리모델링한 공간을 중심으로 정원 교육과 체험, 숙박형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린 가드너스가 정원을 핵심 테마로 잡은 건 대안학교 시절의 경험 덕분이다. 대안학교에서 자체 커리큘럼 중 하나로 봄철에 3개월간 정원 수업을 진행했다. 이후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강희원 사람과초록 대표를 비롯한 대안학교 출신 청년들이 이곳에 정착해 정원을 매개로 청년과 지역을 잇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이 공간에 꽃을 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조경 설계와 정원 문화 전파를 결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이곳의 핵심 프로그램은 '가드너 클래스'다. 단순히 꽃을 가꾸는 것을 넘어 정원 설계와 시공 실무를 전수하는 전문 체류형 교육이다. 조경, 플랜테리어 등에 관심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올해 선보일 예정이다. 수업은 강희원 대표를 비롯해 그린 가드너스 구성원들이 역할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접근성이 낮은 오지의 한계는 '머무는 프로그램'으로 극복했다. 1박 2일 혹은 2박 3일간 정원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는 '가든 힐링 스테이'는 파일럿 운영 당시 매회 30여 명이 참가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린 가드너스는 이같은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전국에서 정원 전문가와 지망생들이 모여들며 지역 관계 인구(특정 지역에 관심을 갖고 자주 방문하며 관계를 쌓는 외지인)를 늘리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강희원 대표는 "청년들이 정원으로 진로를 탐색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린 가드너스에는 현재 12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조경 설계 면허를 바탕으로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용역 사업을 수행한다. 인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산 영남대 인근에도 사무실을 두고 있다. 위토피아 가든 인근의 부지에는 유리 온실과 창고형 건축물을 결합한 복합 문화 공간도 조성 중이다.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올해 초 마을 주민들에게 묘목을 나누어 주었고, 주민들과 함께 마을 정원을 가꾸는 '소규모 마을 활성화 사업'도 진행했다. 그린 가드너스는 세계적 정원 관광지인 일본 홋카이도의 '정원 가도'처럼 마을 전체가 정원 브랜드로 알려지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강 대표는 "전국적으로 정원마을이 많이 생기고 있지만,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정원 마을 하면 누구나 '그린 가드너스'를 떠올렸으면 좋겠다"며 "지역에 청년들이 더 많이 오고, 봉화만의 특색을 만들어 지속 가능성 하도록 하는 게 우리의 본질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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