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아첨하는 AI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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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5-14 20:36  |  발행일 2026-05-15

총 130편의 '사기'(사마천)는 본기, 세가, 표, 서, 열전으로 구성돼 있는 고전 역사서다. 인물사 중심의 열전(列傳)엔 자객, 상인 등 온갖 직업군이 등장한다. 화식열전은 부자들 평전이며, 아첨꾼 이야기로 꾸린 영행열전도 있다. 영행(佞倖)은 '아첨에 능해 군주로부터 총애를 받는 남성'이란 뜻이다. 영행열전답게 도입부엔 '착하게 벼슬살이하는 것보다 임금에게 잘 보이는 것이 낫다'는 대목이 나온다.


영행열전에 실린 아첨꾼 중에서도 등통이 압권이다. 등통은 매일 한문제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주며 환심을 샀다. 한문제(漢文帝) 재위 기간 그의 벼슬길이 순탄했으니 기행(奇行)의 아첨이 먹혔던 모양이다. 폐행전은 고려판 영행열전에 해당한다. 고려사 열전 중 임금의 기호를 엿보며 아첨을 조장한 인물을 정리한 서책이다. 폐행(嬖幸)은 '남에게 아첨하여 귀염을 받는다'는 뜻으로, 아첨과는 함의가 살짝 다르다.


AI도 아첨 본능이 있는 건가. 미 스탠퍼드대 연구진의 AI 챗봇의 아첨을 주제로 한 논문에 따르면 AI가 인간보다 49% 포인트 더 사용자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 주요 AI 챗봇 11개를 분석한 결과다. 예를 들면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내가 잘못한 건가' 게시판에서 네티즌들이 작성자의 잘못으로 평가한 2천여건에 대해 AI 챗봇은 절반 이상 사용자 편을 들었다. 연구진은 "특정 모델의 문제가 아니라 AI들이 공유하는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아첨하는 AI가 인간의 확증편향을 더 추동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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