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사람이 갑자기 벼락에 맞은 듯 섬광 같은 자각의 순간과 마주할 때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그것이 2000년 4월 13일이었던 모양이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일 밤이었다. 당시 그는 낙선이 확실한 지역을 마다하지 않고, 일부러 골라 출마하는 듯한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참이었다.
그날 그를 벼락같은 자각에 빠트린 건 선거 패배가 일찌감치 판명 난 때문이 아니었다. 한 정치인의 말과 글이 그를 낙선보다 더 큰 '충격적인 감동'에 휩싸이게 했다. 어느 단행본에 실린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두 번째 취임연설문이었다. 개표 실황중계를 보느라 심란한 마음을 진정하려 읽어 내려가던 그 연설문 문구 하나하나가 '상습낙선자 노무현'의 가슴을 쥐고 흔들었다.
"… (내전 중인) 남북 양측 모두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느님께 기도하며 상대방을 응징하는 데 신의 도움이 있기를 간청합니다. 남이 흘린 땀으로 자기 빵을 얻는 자들이 감히 정의로운 하느님 도움을 청한다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를 심판하지 않도록 합시다. 남과 북 어느 쪽 기도도 신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 누구에게도 원한 갖지 말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께서 우리더러 보게 하신 그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으로, 이 나라 상처를 꿰매기 위해, … 우리 사이의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데 도움이 될 일을 다 하기 위해서 매진합시다." (1865.3.4. 링컨 재취임 연설)
선거 패배보다, 글로 잠깐 마주친 링컨에 더 감동한 그는 사흘 뒤 한 잡지에 낙선소감문을 보냈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누구와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상대 후보와 싸운 일도 없고 부산 시민들과 싸운 일도 없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에 도전했다 실패했을 따름입니다…"
총선 기간 상대 후보는 노무현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을 자주 했다. 지역주의 타파를 최우선 정치 목표로 걸고 부산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로 출마한 그에게 "참 허황되게도, 영남 출신이면서 전라도당인 민주당에서 차기 대권주자 운운하는 얼빠진 사람이 있다"며 비아냥댔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분도 있던데 어디, 전라도에서 오셨나?" 따위의 지역감정 유발 언동도 서슴지 않았다.
노무현은 일일이 대꾸하진 않았다. 다만 할 말은 더 세게 했다. 그의 대표연설 중 하나가 된 "광주에서 콩이면 부산에서도 콩이고 대구에서도 콩인…"이 그때 나왔다. "옳고 그름을 중심으로, 인물과 정책을 중심으로, 그렇게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를 열겠다"고 외쳤다. 그러나 그 '바른말'은 '어디 민주당이 부산에서'라는 지역정서 앞에 속절없이 묻히고 말았다.
당시 노무현은 '싸움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초선 시절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과 재벌 총수를 질타하고 추궁하는 문답, 연설로 유명해진 그였다. 3당 합당 때는 '정치 스승' 김영삼에 반대, 과감히 결별했다. 그 덕에 부산의 시장과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는 족족 떨어졌다. 종로 보선서 이겨 상습 낙선 굴레는 벗었으나 거길 버리고 또다시 부산 선거에 나섰으니 싸움닭 소리를 들을 만했다.
그런 그가 달라졌다. 이제 선거를 승부, 싸움으로 보지 말자고 했다. 사랑과 화해, 그리고 나라를 위한 쓰임의 정치론으로 더 큰 방향을 잡았다. 그는 "저도 투표 하루 전까진 선거를 승부로 생각했고 승리를 다짐했다"며 "그러나 링컨이 남부를 적으로 몰아세우지도 않고 정의니 불의니, 선이니 악이니 갈라치지 않고 오직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걸 보고…(생각을 바꿨다)"라고 말했다.
링컨은, 노무현에 따르면 '낮은' 사람이 '겸손한' 권력으로 '강한' 나라를 만든 전형적 인물이다. 재임 중 그는 다른 어느 대통령보다 더 치열한 공격을 받았다. 인류적 업적으로 칭송받는 노예제 폐지에 대해서도 즉각적 폐지론자와 노예 소유주 양측으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소수의 점진적 온건 폐지론자만이 그를 지지해 줬으니 당시 미국 백인 거의 모두가 링컨을 반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남부의 연방 탈퇴 선언과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남북전쟁도 그 진행 4년 동안 숱한 반발에 직면했다. 전쟁론자나 평화론자 모두 대통령을 비난했다. 국무위원과 참모들조차 링컨을 바보 취급하기 일쑤였다. 처가 식구들은 적인 남군에 가담했으며 처남은 거기서 전사했다. 그런 처절한 역경과 고난 앞에서도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쪼개진 나라를 다시 합쳐 살려내기 위해 울음조차 숨겨 울었다.
노무현이 이런 링컨에 빠진 건 둘의 인생 행로에 닮은 점이 많은 것도 영향을 주었음 직하다. 둘 다 자수성가한 변호사 출신 정치인이고 출신 학력이 변변치 않았다. 숱한 선거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더 높은 데를 추구했다. 반대파의 조롱을 받으면 유머와 재치로 넘긴 것도 비슷하다. 그런 노무현이 남군의 항복을 받은 율리시스 그랜트 북군 총사령관에게 커다란 감명을 받은 것도 당연했다.
1865년 4월 9일. 링컨이 대통령에 재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남군 로버트 리 사령관이 북군에 항복했다. 항복문서 서명식 후 북군 병사들이 승리에 겨워 축포를 터트리려 하자 그랜트는 이를 만류했다. "어제의 적은 오늘 이후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다." 그러면서 남군 장교는 장교의 상징인 장검을 지니고, 사병은 말을 타고 고향에 가 생업에 종사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 대통령에 그 장군'에 감명받은 노무현은 1년여 링컨을 공부하고 '노무현이 만난 링컨'(2001.11. 학고재)이란 책을 펴냈다. 서문에서 그는 상극의 정치판에 대한 부끄러움을 절절히 드러냈다. "보통의 정치인은 제 입지를 강화하려 적을 부각하고 분노와 증오를 부추긴다. 자기 편을 단결시키기 쉽고 중간 사람을 제압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편 갈라 분노 증오를 부추기고 나를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것이 정치 게임에서 승리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다…"
지난주가 노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였다. 내주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이 들어 있다. 노무현이 필생의 꿈으로 꼽았던 지역감정 타파는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번 선거에도 큰 이슈로 등장했다. 여당은 노무현 정신 계승을 다짐했고 야당은 민주당이 노무현을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노무현이 링컨을 만난 후 절절히 새긴 사랑과 관용의 국민 화합을 강조한 정치인은 찾아보기가 참으로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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