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 문화평론가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환갑을 살짝 넘긴 1926년,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라는 시를 발표한다. 이 시의 첫 구절은 뒤에 동명의 유명한 영화가 나옴으로 해서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졌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리고 같은 시는 2연에서 잇는다. '늙은이란 하찮은 존재, 작대기에 입혀 놓은 넝마일 뿐이다.' 지성의 최고봉인 시인조차도 육체의 쇠락을 저리도 한탄했을진대, 애초 몸으로 가치를 증명해야하는 스포츠 판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에 '노인을 위한 팀' 따위가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독 노인들을 사랑했던 팀이 있었다. 바로 우승에 목말랐던 90년대의 삼성라이온즈다. 물론 삼성이 당시 긁어모았던 노인들은 다 한때는 일세의 영웅들이었다. 문제는 삼성 유니폼을 입은 뒤의 모습이었다.
최동원은 전성기 시절 5년 연속 200이닝을 넘게 던졌고, 통산방어율 2.46은 선동열 다음으로 좋다. 그렇지만 그는 삼성에서 보낸 마지막 해, 5.28의 방어율에 WAR는 -0.03을 기록했다. 나오지 않는 편이 어쩌면 더 도움이 됐을 거란 이야기다. 박동희는 선수생활 마지막 5년을 삼성에서 뛰며 고작 7승만을 기록했다. 이강철은 해태에서 10년 연속 10승의 금자탑을 쌓은 뒤, 대구에 와서 고작 2년간 2승을 한 뒤 광주로 돌아갔다. 조계현 역시 그간 2~3점대를 오갔던 준수한 방어율이 삼성에선 5점대로 와르르 무너져버렸고, 통산 80승의 투수 한희민 또한 라이온즈에선 4승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그나마 2년 연속 12승을 거두어준 김상진(70)은 축복이었달까.
야수 쪽은 그나마 조금 괜찮은 케이스도 있었다. 김용철과 신경식은 이적 첫 해 둘 다 3할 타격을 기록하며 팀 타선에 보탬이 되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나머지 선수들의 기록은 처참 그 자체다. 빙그레에서 2년 연속 타격왕을 했던 이정훈은 고향에 돌아와서 2년 연속 OPS .6 초반의 초라한 성적을 찍는다. 7번이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명외야수 이순철은 마지막 해 삼성에서 .213의 타율을 기록했다. LG의 안방마님 김동수, OB의 4번 타자 김형석 역시 라이온즈에서의 성적은 실망 그 자체였다.
2000년대가 되면서부터 삼성도 이적생들의 덕을 보기 시작했다. 임창용, 노장진이야 새파란 나이에 왔다 쳐도, 앞의 선수들과 비슷한 30대 언저리에 이적했던 김기태, 마해영, 심정수, 박진만 등도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을 하며 2000년대 3차례의 값진 우승을 이끌었던 것이다. 그 뒤 삼성은 2010년대에 들어 자급자족의 왕조가 되어버렸다. 권좌에서 내려온 뒤에도 준척들 정도만 간간이 영입이 되었을 뿐, 삼성은 더 이상 리그 최고의 스타들의 노후를 책임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삼성은 참으로 오랜만에 리그 최고의 타자를 2년 계약으로 영입한다. 그의 나이는 무려 42세. 31살에 삼성에 왔던 최동원, 32살에 왔던 이정훈은 말할 것도 없고, 34살의 이강철, 조계현, 37살의 이순철보다도 그는 훨씬 고령의 몸으로 이 팀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는 6월1일 현재 .346/.463/.533이라는 MVP급 슬래시라인을 기록하고 있다. 90년대에 사기 당했던 적금이 갑자기 30여년 만에 어마어마한 복리와 함께 돌아온 기분이랄까. 그래서 올해 대구에서만큼은 예이츠는 틀렸다. 노인을 위한 팀은 있다. 그게 바로 2026년, 최형우의 라이온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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