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갤러리전에서 만난 강애자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지난 4일 갤러리전에서 만난 강애자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강애자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자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화면 안에는 산과 물이 있고, 달무리가 진 듯 흐릿한 달의 형상도 보인다. 화면 위에 형성된 물감의 갈라짐은 관람자의 시선을 붙든다. 어두운 부분이 거친 질감을 주는 반면, 흰 부분에서는 포슬포슬한 균열감이 느껴진다. 색과 두께감의 미묘한 차이는 어느 부분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마음속 여러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갤러리전이 개관 22주년을 맞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재미 작가 강애자 초대전 'Points of Emergence'를 오는 20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40여 년간 작품활동을 해온 강 작가의 첫 대구 전시다. 지난 4일 갤러리전에서 만난 강 작가는 "저는 대구에 연고가 없지만, 아버지 사촌이 이곳에 계셔서 어릴 적 대구에 온 적이 여러 번 있었다"며 "미국 LA에서 열린 아트쇼에서 전병화 대표를 만난 인연이 이번 전시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강애자 작. <갤러리전 제공>
강 작가는 한국적인 여백의 미감 위에 현대적인 재료 실험과 크래킹 기법을 결합해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균열과 생성, 침묵과 울림의 순간을 통해 탐색해온 존재의 본질을 펼쳐보인다. 10년 단위로 시리즈 작업을 해온 그는 이번 전시 작품에서 화면 위에 형성된 균열을 파괴의 흔적이 아니라, 내부에 잠재돼 있던 감각과 에너지가 드러나는 '생성의 지점'으로 바라본다.
강 작가는 "새싹이 나오려면 땅을 뚫고 나와야 하고, 계란이 깨지고 병아리가 나온다. 없던 것, 안 보이는 곳에서 새로운 것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데에서 내가 상상도 못 한 에너지와 형태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며 이게 본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깨지는 것, 금이 가고 크랙이 가는 것은 실패나 상처가 아니고 새로운 게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작가는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형성 중인 사건'으로 바라본다. 물감과 한지를 비롯한 다양한 혼합 재료들이 한층 한층 쌓이며 서로 영향을 주는 과정 속에서 화면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작품은 자연과의 협업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건이라고 본다"며 "보통 70대 30이라고 말한다. 레이어의 밀도, 여백의 비율 등은 머릿속에 그려놓고 계획을 세우지만, 최종적인 결과는 내 의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작업 과정에 개입하는 습도, 온도, 시간 등은 자연에 맡겨진다"고 설명했다.
강애자 작. <갤러리전 제공>
강 작가에게 작품의 완성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생성의 시작이다. 강 작가는 "작품은 완성했지만, 이야기는 미완성으로 남겨놨다고 생각한다. 시간, 경험, 명상, 사유 등으로 작업을 시작하지만 이것들은 제가 완성할 수 없는 것들"이라며 "100명이 보면 100가지 이야기가 완성될 수 있다. 관람자의 생각과 인생, 시각 등 모든 걸 여기에 집어넣어 자기 나름대로 완성해 가기를 바란다. 관람객들이 자기 생각을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생성의 지점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작가는 화면의 균열과 레이어가 관람객 각자의 삶과 시간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는 "종교, 성격, 직업, 지식, 경험 등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에너지라고 한다면, 이것들이 모여 밖으로 표출된 게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작품의 크랙이 나오기 위해 밑에 여러 에너지가 있었던 것처럼 '나를 만들기 위한 에너지는 무엇일까'를 관람자들도 작품을 보면서 떠올려봤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 4일 갤러리전에서 만난 강애자 작가가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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