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특집] “그 사람, 정말 착한 사람이었지”…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손녀의 한국 유학

  • 김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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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23 20:55  |  수정 2026-06-23 21:16  |  발행일 2026-06-23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운전병 케베데 아바테의 손녀 사바윗
107세 참전용사가 떠올린 할아버지, “그 사람, 정말 착한 사람이었지”
한국전쟁 인연 따라 계명대 유학, 참전용사 봉사도 이어가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용사 케베데 아바테의 손녀 사바윗 솔로몬 학생이 지난 22일 계명대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현목 기자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용사 케베데 아바테의 손녀 사바윗 솔로몬 학생이 지난 22일 계명대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현목 기자

"아, 그 사람. 정말 착한 사람이었지." 2~3년 전 계명대 유학생 사바윗 솔로몬(20·한국명 하은비·독일유럽학과)씨는 에티오피아에 설립된 6·25참전용사회관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 우연히 만난 107세 어르신이 건넨 이 한마디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늘 사진으로만 접했을 뿐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할아버지를 가족이 아닌 타인을 통해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할아버지 케베데 아바테씨는 1951년 18세 나이로 6·25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인이다. 그리고 7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그의 손녀 사바윗씨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지만 그저 지키기 위해 할아버지가 참전했던 나라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6·25전쟁 76주년을 사흘 앞둔 지난 22일 계명대 인터내셔널 라운지(바우어 신관 1층)에서 만난 사바윗씨는 할아버지의 참전 이야기와 한국 생활의 의미를 차분히 들려줬다.


케베데씨가 6·25전쟁에 참전한 기간은 1951년 6월부터 1952년 7월까지 1년이 조금 넘는다. 에티오피아는 당시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지상군을 한국에 파병한 나라다. 강뉴부대 소속 장병 6천여 명이 한국에 파병됐으며 케베데씨는 운전병으로 복무했다. 사바윗씨는 할아버지를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태어나기 20여 년 전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족이 들려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손녀의 마음속에 살아 있게 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정말 착한 사람" "힘든 사람이 있으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남자" 등 늘 같은 이야기를 해왔다. 가족에게 케베데씨는 참전용사이기 전에 이웃을 챙기고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사바윗씨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자랐다.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용사 케베데 아바테. <사바윗 솔로몬 제공>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용사 케베데 아바테. <사바윗 솔로몬 제공>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시작된 한국과의 인연


사바윗이 할아버지의 6·25 참전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때였다. 언니들과 함께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던 어느 날 어머니가 꺼낸 한마디가 계기가 됐다.


어머니는 "너희 할아버지도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고 했다. 그 말은 어린 소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때부터 좋아했던 한국 드라마와 K-팝에 더해 한국어를 더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은 단순한 동경의 대상이 아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나라가 됐다.


고등학생이 된 사바윗은 "할아버지가 평화를 위해 싸웠던 나라에서 꼭 공부하고 싶었다"며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참전용사들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졌다고 했다. 그는 에티오피아에 거주하는 참전용사들을 찾아가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봉사단들의 통역을 맡고 한국어 교육을 돕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참전용사들과 인연을 맺었다.


사바윗은 "처음엔 살아계신 참전용사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봉사활동을 하면서 한 분 한 분 만나게 됐고 거의 모든 참전용사를 찾아뵌 것 같다"고 했다. 만난 참전용사만 60명이 넘는다.


참전용사들이 들려준 6·25 전쟁 이야기는 책에서 접한 역사와는 또 달랐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혹독한 추위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바윗은 "참전용사들이 '우리는 적과만 싸운 게 아니라 추위와도 싸웠다'고 말했다"며 "에티오피아엔 한국처럼 추운 겨울이 없는데 어린 나이에 낯선 나라에 와서 그런 환경 속에서 싸웠다는 게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실제 지난해 한국에 온 뒤 처음 접한 혹독한 겨울에 대해 그는 "한국 겨울이 너무 추웠는데 할아버지와 참전용사들은 전쟁 중 그 추위를 견뎌야 했다고 생각하니 존경스럽다"고 했다.


◆전우의 기억 속 살아 있던 할아버지


현재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들을 만나던 어느 날, 107세 참전용사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사바윗 솔로몬 학생이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한국전쟁에 간호장교로 참전한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바윗 솔로몬 제공>

사바윗 솔로몬 학생이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한국전쟁에 간호장교로 참전한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바윗 솔로몬 제공>

사바윗이 "혹시 케베데 아바테라는 분을 아세요?"라고 묻자 잠시 생각하던 노병의 얼굴에 미소가 확 번졌다. 이 노병은 "아, 그 사람. 정말 착한 사람이었지"라고 답했다. 가족들에게 듣던 말과 같았다.


순간 사바윗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듯한 감정이 느껴져서다. 그는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며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계명대 해외봉사단과 함께 에티오피아를 찾아 한국어 교육과 통역 봉사를 이어갔다. 한때 참전용사 후손으로 도움을 받던 위치에서 이젠 누군가를 돕는 봉사자로 다시 현장을 찾은 것.


사바윗은 "참전용사들을 만나면서 왜 사람들이 그분들을 존경하는지 알게 됐다"며 "지금도 나라에 어려움이 생기면 다시 나서겠다고 말하는 분들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현재 계명대 독일유럽학과에 재학 중인 사바윗은 국제 범죄를 수사하는 국제형사를 꿈꾸고 있다. 어릴 적부터 경찰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할아버지처럼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사바윗은 "국제형사가 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했던 것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은 그에게 단순한 유학지가 아니다. 할아버지의 용기와 희생이 남긴 인연이 이어지는 특별한 나라다.


사바윗은 "할아버지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지금도 제 삶 속엔 늘 살아 계신다"며 "제 삶의 모습이 할아버지의 선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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