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 문화평론가
감자를 훔쳐 먹던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축구를 무척 좋아했던 그 소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가짜 유니폼 뒤에 검은색 마커로 'Ronaldo, 7'이라고 적으며 축구선수가 될 꿈을 꾼다. 처음으로 축구화가 생겼던 날에는 그것을 신고 잠들기도 했다. 그런 이 소년에게 매니저를 자청하고 나선 한 사람이 있었다. 10살짜리 여동생이었다. "오빠는 다음 세대의 호날두가 될 수 있어." 소년은 그런 여동생과 함께 꿈을 꾼다. 우리 프랑스에 가서 살자. 큰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아무 것도 걱정할 것이 없는 그런 삶을 살자.
소년은 과연 재능이 있었고, 여러 클럽을 떠돌며 입단 테스트를 받기에 이른다. 본머스, 첼시, 레인저스, 올림피아코스 등등. 하지만 오매불망 기다리던 계약 제안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MLS의 샬럿에게마저 거절당하자, 그의 비자는 거의 만료 상태가 되기에 이른다. 그때 기적처럼 한 팀이 그에게 입단을 제안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가네스였다. 그리고 그는 몇 달 뒤, 무려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른다. 18살. 소년은 어느덧 청년이 되어 있었다.
이제 꿈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싶었던 그때, 그는 한 통의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는다. "네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파티에서 누군가가 동생의 음료에 뭔가를 넣었고, 그걸 마신 동생이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는 참담한 소식이었다. 제망매가의 구절처럼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간' 동생이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청년은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신의 커다란 계획의 일부라고 믿기로 하고, 그 모든 아픔을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 쓰기로 작정한다. 그 뒤 그는 매일 TV조차 없는 숙소와 훈련장만을 오가며 다짐한다. 내 축구로 너를 계속 살아 있게 만들 것이다. 돈, 집, 차가 모두 하찮아진 청년은 그렇게, 세상을 떠난 여동생을 위해 더 성숙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분데스리가 라이프치히로 이적한 그는 불과 19살의 나이로 13득점 9도움을 올리며 자신의 여동생의 예언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성실한 그는 노 딕헤즈(No Dickheads: 인성이 나쁜 선수는 영입하지 않는다) 원칙으로 유명한 리버풀의 주목까지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6년, 그는 조국 코트디부아르 선수단과 함께 월드컵에 참전했다. '더 플레이어즈 트리뷴'에는 대회에 참가하는 그 '얀 디오망데'의 출사표가 실려 있다. 그것은 비명의 여동생 '록산느(Roxane)'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내 골로 전 세계가 너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겠다.' 그리고 그는 1차전 에콰도르전에서 POTM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더니, 3차전 퀴라소전에서는 어시스트를 올리며 사상 처음으로 조국 코트디부아르를 월드컵 토너먼트로 이끌었다.
마침 '라볼피아나'와 '어태킹 서드의 라인 브레이킹' 리더십에 빛나는 대한민국이 보기 좋게 32강 진출 실패를 알려왔기에, 나는 남은 월드컵 기간 동안 이 디오망데를 내 동포인양 열심히 응원하기로 결심했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백쓰리를 유지하며 뒤로 볼을 돌리는 난해한 축구보단, 먼저 미타찰(彌陀刹)에 간 동생을 위해 단 한 골을 넣고자 전진하는 10대 청년의 집념을 더 응원하고픈 법 아니겠는가. 디오망데가 마침내 골을 넣고 록산느의 이름을 포효할 때 그것이, 승패와 상관없이 미친 듯 뛰고 울었던, 그 언젠가의 한국을 좀 더 닮아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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