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노래와 진실

  • 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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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14 14:49  |  발행일 2026-07-15
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천명관 소설가의 신작 '아코디언'은 정전 이후부터 60년대 초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죽음이 만연한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앵벌이 집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전쟁이 지나가고 살아남은 아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게 되는지를 보여주며 한국사회의 한 역사적 국면과 흐름을 요령 있게 그려보인다. 소설의 주인공 동이는 앵벌이 소년 중 하나인데 그의 손에는 아코디언이 들려 있다. 이 소설의 명장면 중 하나는 세상의 비정함을 알아챈 순간에 주인공 아이가 내뱉는 대사이다. 스포일러가 될까 조심스러워 우회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주인공은 세상의 음악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운다. 그런데 음악이 어떻게 세상을 알게 해준다는 말일까.


동양의 고전 시경(詩經)은 일종의 채시(采詩)를 통해 구성된 책이다. 여기에 수록된 시편들의 저자는 무명씨들이다. 민간에 떠도는 노래들을 모아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위정자들은 시경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마주할 세계의 진상을 파악했다. 노래와 음악이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복잡하거나 또는 드러내기보다 숨기고 싶은 속내는 노래와 같은 율동적 언어에 잘 실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주 평이해 보이는 노래도 뜯어 읽다 보면 거기에는 일정 부분 세상의 진실이 묘하게 녹아있다.


"반달 모양 엄청 큰 칼로/ 피자를 잘라주는 코너가 있어 롯데슈퍼엔/ 붙잡혀/ 피자를 기다리고 있다보니/ 매장엔// 행텐 티셔츠 5천원// 동남아 노동자들/ 옷을 들어올려/ 자기 가슴에 대본다// 멀리서/ 나도 괜히/ 가슴에 대봤다"('피자를 기다리며')


김영승 시인의 새 시집 '파리 팔휘 토끼 톡휘 다리 달휘'에 실린 시이다. 1연의 3행의 '붙잡혀'란 단어가 유독 눈에 밟힌다. 의미적으로 시의 화자인 내가 피자를 기다리는 상황을 지시하는 거겠지만, 저 단어는 왠지 3연의 첫 행에 등장하는 '동남아 노동자들'에게까지 인력(引力)을 행사하는 듯하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세계에서 소위 글로벌 사우스의 노동자들은 글로벌 노스 소비자들의 편리를 위해 붙들린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노스에 살든 글로벌 사우스에 살든 옷을 고를 때 그것을 들어 자기 가슴에 대보는 일을 하는 것조차 닮은 똑같은 사람들이지만, 세상의 지배 논리가 그렇지 못하다. 경제적으로 잘사는 나라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하며 살아간다. 시 속에 등장하는 티셔츠의 가격이 저처럼 저가일 수 있는 맥락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저 옷의 라벨에는 분명 동남아 국가명이 생산지로 적혀 있을 것이다. 괜히 부끄러운 가슴이 된다.


한 지역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외국인 온열질환자는 249명이고 이 중 80% 정도가 노동자이다. 이 통계는 전국 의료기관 500곳 대상 응급실 내원환자만을 집계한 것이기에 실제 인원은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폭염이 지속될 때마다 야외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이 눈에 밟힌다. 어느 국적의 사람이든 폭염 속에서는 노동을 멈추고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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