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뫼의 음유시인(音流示人)] 나와, 우리 모두의 음악

  • 강한뫼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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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16 17:24  |  발행일 2026-07-16

음유시인(音流示人). 음악을 흘려 당신을 봅니다. 음악이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소리 너머에 있는 인간의 감정과 시대를 살펴봅니다.


오스트리아-보헤미아 출신 낭만주의 작곡가인 구스타프 말러. 1907년 모리츠 네르가 빈 궁정 오페라 극장 감독직 임기를 마칠 무렵에 촬영한 사진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오스트리아-보헤미아 출신 낭만주의 작곡가인 구스타프 말러. 1907년 모리츠 네르가 빈 궁정 오페라 극장 감독직 임기를 마칠 무렵에 촬영한 사진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의도와 해석의 사이에서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제5번 올림 다단조, 4악장 아다지에토.


이 곡에는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지휘자 빌렘 멩겔베르크(Willem Mengelberg)의 증언에 따르면, 말러가 훗날 자신의 아내가 되는 알마(Alma Mahler)와의 첫 만남을 위해 이 악보를 그녀에게 보냈다고 한다. 악보를 받은 알마가 자신에게 오라는 답장을 보냈고, 이것으로 그들의 관계가 시작됐다고 한다. 사랑의 시작. 첫 만남의 설렘. 이것이 이 음악의 '의도'였다.


그런데 오늘날 이 악장은 유명 인사들의 장례식장에서 빈번히 연주된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랑을 노래하는 음악이 죽음의 자리에 놓여 있다. 누군가는 "사랑을 구하는 것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알마 말러. 1902년 구스타프 말러와 결혼했다. <위키피디아 제공>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알마 말러. 1902년 구스타프 말러와 결혼했다. <위키피디아 제공>

하지만 죽은 말러는 말이 없다. 고등학생 때 처음 이 음악을 들었다. 당시 필자는 상당한 '슬픔'을 느꼈다. 그 무렵 첫사랑의 쓰라린 아픔 속에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됐다. Hey의 'Je t'aime'라는 곡을 들었을 때였다. 사랑을 고백하는 가사가 있고, 누구나 밝다고 느낄 음악인데, 그 음악에서도 오직 '슬픔'만을 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감정의 근원이 음악 자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슬픔은 음악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열여덟 필자에게 있었다. 음악을 들을 때의 심정, 다시 말해, 자신의 상태를 음악 위에 덧입히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인가. 말러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말러는 자신의 교향곡 제5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열정적이고 거칠고 비극적이고 엄숙하며,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단지 음악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단지 음악일 뿐이다.' 이 말 속에 답이 있었다.


◆추상적인 것에 감정이 있을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파벨만스'의 마지막 장면이 있다. 주인공 샘은 평생 존경해온 감독 존 포드를 만난다. 샘은 한 장의 사진을 보며 그 안의 사람과 사건을 설명하지만, 존 포드는 사진 속 지평선이 어디에 있는지만 반복해서 묻는다. "위에 있는가, 아래에 있는가."


그는 무엇을 담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담았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영화는 그 지평선의 위치로 관객의 시선을 만들고, 카메라의 각도로 세상을 보는 순서를 정한다. 영화의 장면이란 단편적으로 순간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 감동에 이르도록 설계되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샘은 한 장의 사진을 보며 그 안의 사람과 사건을 설명하지만, 존 포드는 사진 속 지평선이 어디에 있는지만 반복해서 묻는다. <CJ ENM 제공>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샘은 한 장의 사진을 보며 그 안의 사람과 사건을 설명하지만, 존 포드는 사진 속 지평선이 어디에 있는지만 반복해서 묻는다. <CJ ENM 제공>

작곡도 마찬가지다. 음악 역시 감동에 이르도록 설계한다. 다만 영화가 표정과 대사, 영상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으로 감정을 전달한다면, 음악은 훨씬 추상적이다. 우리가 사랑을 느끼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직접 보기 때문이 아니다. 말과 표정, 행동을 통해 그것을 사랑이라고 이해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가라앉는 선율, 흐느낌을 연상시키는 비브라토, 사라져가는 음량 같은 소리 현상을 통해 감정을 짐작한다. 연주자가 슬픈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소리를 타고 슬픔이 전이되는 것일까. 배우의 눈물과 떨리는 목소리처럼, 음악 역시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철저히 소리의 연출이자 기술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작곡가는 감정을 '상투성(cliché)'을 통해 전달한다. 예를 들어 '장조는 밝고, 단조는 슬프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실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음악이 만들어 온 관례다. 작곡가는 그것을 활용한다.


말러의 사랑 고백에서 슬픔을 느껴버린 열여덟의 필자는, 말러가 말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음악의 구성 요소와 감정의 상관성을 파헤쳤다. 자신의 슬픔이 말러의 어떤 음악적 특징으로부터 비롯되는지 찾기 위해, '장조는 밝고, 단조는 슬프다'는 알고 있는 유일한 관념으로부터 출발했다. 사랑은 밝은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니 밝음을 느껴야 할 음악에서 내가 슬픔을 느낀 것은, 필시 단조성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의 살인 장면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흐르는 것처럼, 반어적인 작곡 방식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 모든 추측은 악보를 펼치는 순간 바로 무너졌다. 아다지에토는 F '장조'였다. '장조는 밝고, 단조는 슬프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오랜 경험이 만든 보편적인 경향일 뿐, 감정을 보장하는 공식은 아니었다.


◆단지 음악일 뿐이다


음악은 작곡가의 의도에서 시작된다. 말러는 이 곡으로 사랑의 설렘을 전하려 한 것이 그 의도다. 하지만 음악이 세상에 나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말러만의 것이 아니었다. 열여덟의 고등학생은 첫사랑의 아픔 속에서 말러의 음악으로부터 슬픔을 들었다. 누군가는 장례식장에서 떠나간 이를 기억하기 위해 그리움으로 듣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러의 일화를 떠올리며 음악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에게 청혼을 한다.


모두 같은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전부 다른 음악을 듣고 있었다. "작곡자의 세계와 주관으로 시작한 것이 객관적인 객체가 되어 새로운 주관들로 풀어헤쳐진다." 이것이 의도와 해석으로 같고,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음악의 본질이다.


낭만주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 <미국 링컨센터 소장>

낭만주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 <미국 링컨센터 소장>

작곡가의 의도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작곡가 지망생의 자질 미달도 아니었고,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떠오르게 하지 못한 말러의 실패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말러의 사랑 노래에서 느꼈던 슬픔은 당시의 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음악이 제 의도를 바꾸어 슬픔으로 찾아온 것이며, 그저 곁에 머물러주던 말러의 위로였을지도. 어쩌면 필자가 아다지에토를 계속해서 들었던 것도 감정에 집중했다기보다, 음악이 주던 평온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한 번은 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지금은 아내가 된 사람과 통화를 했다. 그날의 아다지에토는 슬프지 않았다. 아주 황홀했다.


작곡가에게는 참으로 개인적인 '음악'이다. 그러나 음악은 누군가 들어야 비로소 존재 가치를 얻기에, 애초에 혼자만의 것으로 출발하지 않는다. 누구든 자신의 감정으로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각자가 필요한 감동을 발견하게 된다.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는 다짐도, '올바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관념도 잠시 내려놓고, 아무런 사유 없이 흐르는 음악이 개인에게 건네는 감정에 집중한다면,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진실로 '나'를 마주하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음악은 그렇게, 단지 음악일 뿐이면서도 모든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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