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 소설가
'마지막'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슬프다. 이 말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 등을 떠올리게 한다.
1945년 7월24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마지막 의열 투쟁 '부민관 의거'가 일어났다. 이날 부민관에서는 당대 최고 친일파 박춘금 등이 일본의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아시아 민족 분격 대회'를 열고 있었다. 대한애국청년당 강윤국, 권준, 우동학, 유만수, 조문기 등 지사들은 사전에 설치해두었던 폭탄을 터뜨려 행사를 무산시켰다.
이날 박춘금을 처단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다행은 지사들이 체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광란의 세계전쟁을 진행 중인 일제에 붙잡혔으면 얼마나 잔혹한 고문에 시달렸을 것인가! 짐작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극장을 신속히 폐문한 일제 경찰은 범인 검거를 도모했지만 이미 지사들은 날렵히 현장을 벗어나 안전하게 몸을 피했다.
그로부터 불과 22일 지나 독립을 되찾았다. 이번에는 박춘금이 몸을 피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하자 잽싸게 도쿄로 도주했다. 박춘금에게 도쿄는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인을 중의원에 당선시켜준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 조선인이 바로 박춘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의 영웅' 맥아더는 반민특위의 박춘금 송환 요구에 불응했다. 이번에는 미국이 박춘금을 지켜준 것이다. 한때 세계 최강처럼 보였던 일본에 이어 새로운 제1강 미국의 보호막 아래 박춘금은 편안히 마지막 여생을 보낸 뒤 자연사로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 수업'의 교사는 오늘 수업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마지막 잎새'의 늙은 마을화가도 자신이 마지막 잎새를 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지막 황제'의 청나라 황제 푸이도 자신이 마지막 황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부민관 지사들은 자신들의 의거가 독립운동사에 마지막 의열 투쟁으로 기록될 줄 알지 못했다. 22일만 지나면 나라를 되찾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박춘금조차도 갑자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을 터이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 아름답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생애가 언젠가는 마지막을 맞는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 마지막 날이 구체적으로 언제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빈둥대는 사람도 많고 촌음을 아껴 쓰는 사람도 많지만, 누구에게든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도연명은 "지금 이 새벽은 다시 오지 않고,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했다. 카네기는 문학가가 아닌 탓인지 훨씬 노골적으로 말했다. "소심하게 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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